검찰 수사에 대한 법관들의 실명 비판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밤샘 수사 문제’ ‘강제수사 적법성 문제’ 등 지적할 만한 내용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조사와 맞물려 있는 까닭에 인권과 적법성 문제를 고리로 한 중견 법관들의 견제로 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사법농단 수사가 시작한 뒤 검찰 수사와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린 판사는 7명이다. 비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9월30일)이 있은 뒤인 지난 8일.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전산망에 ‘이번 수사가 검찰 조직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법원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잘못된 목적의식이 아니길 바란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하기만 하면 돼)’식의 수사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수사가 사법농단 핵심인물로 알려진 임 전 차장을 향하자 비판 글이 한꺼번에 나왔다. 임 전 차장 첫 소환 조사 다음날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게시판에 ‘밤샘수사는 고문이니 고쳐야 한다’는 취지로 글을 썼다. 임 전 차장 구속이 결정(27일)되고 하루 뒤엔 ‘판사는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는 글도 올랐다. “주거에 범죄 증거가 될 만한 자료가 있다는 것이 소명되지 않는 이상 주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의 발부는 신중하여야 한다”는 게 요지였지만 “검찰을 무소불위의 빅브라더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법원”이라며 검찰을 정조준 했다.
이를 놓고 법조계에선 시기가 묘하다는 반응이 많다. 한 판사는 “밤샘수사를 지양하고, 영장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백 번 옳은 말”이라면서도 “사법농단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검찰 움직임 하나하나에 맞춰 지적하니 의도가 있는 글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찰 역시 “강제로 자정을 넘겨 수사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하필 이번 사안을 놓고 지적이 나오니 당황스럽다”는 분위기였다.
이런 가운데 검찰 수사가 위법했다는 주장까지 나와 법ㆍ검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30일 검찰이 별건 압수를 했다는 글을 올렸다. 양승태 사법부의 직권남용 혐의를 수사하는 검찰이 피의사실과 관련 없는 자신의 이메일 자료를 추출해 125건의 이메일을 압수했고, 29일엔 자신의 이메일에 대해 추가 압수수색을 했는데 새 영장을 받지 않고 기존 영장으로 집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검찰 관계자는 “영장 유효기간은 이달 말까지고, 피의사실과의 관련성은 일차적으로 수사기관이 판단하는 것”이라며 정상적이고 적법한 진행이었다는 입장이다. 논란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노수 전주지법 남원지원장은 김 부장판사 주장에 이틀에 걸쳐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를 없애자”는 취지로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대상 범위 등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묻는 글을 올렸다. 압수수색 대상이 김 부장판사 이메일 계정 백업 데이터가 아니라 대법원 전체 이메일이었다면 29일 추가 압수수색에 위법성이 없다는 취지다.
수사가 정점으로 치달을수록 법관들의 위법성 견제가 집중될 것으로 보여 검찰로서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전망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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