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건 나인데, 왜 부모님 직업을 궁금해 할까요?” 부모님 직업을 묻는 이력서 항목은취업 준비생들을 당황케 합니다. 부모님 직업란을 작성하는 까닭을 납득하기 어려우면서도, 빈칸으로 두면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해 적어 넣는 게 현실. ‘현대판 음서제’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지만 소위 ‘부모 스펙’에 따른 차별을 막을 법적 근거는 현재 없습니다. 부정채용 관련 의혹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여전히 구시대적인 이력서 항목, 한국일보가 살펴봤습니다.
제작=김수진 인턴기자
하반기 공채가 한창인 요즘, 올해로 취업준비생 2년차인 김모(26)씨가 가장 힘 빠지는 순간은 이력서의 '부모 직업란'을 채워 넣을 때.
김씨의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생 때 이혼 후 요양보호사로 밤낮없이 일하시며 대학까지 뒷바라지 해왔는데요.
“이혼 가정이라는 게 흠은 아니지만 이력서에 쓰긴 꺼려져 연락도 닿지 않는 아버지의 직업을 써넣을 때도 있어요.” (취업준비 2년차 김모(26)씨) 김씨는 힘들게 키워주신 어머니께 늘 감사하지만, 이력서를 쓸 때면 ‘우리 부모님도 그럴듯한 직업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부끄럽습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어머님이 누구니?” 노동계에 따르면 채용과정에서 가족의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상황.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공공기관과 달리, 사기업은 여전히 구직자에게 부모의 학력, 직업 정보 등을 요구합니다.
“한번은 일부러 가족사항을 빈칸으로 비워뒀더니 면접에서 ‘왜 안 써냈냐’고 불쾌한 티를 내더라고요.” (식품회사 취업을 준비중인 이윤미(23)씨) 특히 보수적 채용문화가 굳어진 기업일수록 이력서나 면접에서 부모의 ‘스펙’을 묻는 사례가 많습니다.
“한 은행 최종면접에서 면접관이 다른 지원자에게 ‘아버지가 이 회사에 다니냐’고 물었어요. 아니나다를까 그 사람이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허무했죠.” (대학생 윤석민(26)씨) 구직자들은 부모의 직업을 묻는 이력서 항목이 자칫 특혜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청탁까지는 아니더라도 임직원의 자녀나 친척이 채용 과정에서 가산점 등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2016년 고용노동부의 ‘단체협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의 약 25%에 달하는 사업장이 재직자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현행 법은 근로자를 채용할 때 부모의 학력과 직업, 직위 등에 따른 차별 금지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은데요. 고용부는 과도한 경영권 침해가 될 수 있다며 법 개정에 미온적입니다.
고용 세습, 친인척 채용 비리 등 의혹 속 취준생을 두 번 울리는 이력서의 '부모 직업란'. 투명하고 공정한 채용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대로 된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원문_전혼잎 기자 / 제작_김수진 인턴기자
사진출처_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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