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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소통 불가능한 히키코모리 내셔널리즘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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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소통 불가능한 히키코모리 내셔널리즘 대변”

입력
2018.11.0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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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은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관련 행사, 발언, 사회 풍경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사카이 교수는 “국민의 무관심”이라며 “메이지유신 100주년 기념행사로 온 나라가 들끓었던 1968년 고도성장 시기 일본과 매우 대비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은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관련 행사, 발언, 사회 풍경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사카이 교수는 “국민의 무관심”이라며 “메이지유신 100주년 기념행사로 온 나라가 들끓었던 1968년 고도성장 시기 일본과 매우 대비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 미국 중간선거를 보름 앞둔 22일 텍사스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자신을 ‘민족주의자(Nationalist)’로 칭했다. 이민자, 난민을 집요하게 공격해온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규명한 건 이 연설이 처음이었다. 닷새 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교 예배당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며 미국 ‘내부의 적’은 유대인으로 번지는 추세다.

#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때 관용적 수용 정책을 취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방선거에 잇달아 패배하며 2021년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극우정당 ‘동맹’과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이 집권연정을 구성했고, 헝가리에서는 극우파 반이민 기조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3선 연임에 성공했다.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전 세계적’ 극우의 득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국 코넬대 아시아연구과의 사카이 나오키(72) 교수는 소수자 혐오에 바탕을 둔 극우세력의 선전을 ‘히키코모리 내셔널리즘(은둔형 민족주의)’이라 명명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의 이민배제 현상, 영국의 브렉시트는 모두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히키코모리’란 이름처럼,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한 채 지지 세력의 내부 결집에만 골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견해를 담은 저서 ‘히키코모리 내셔널리즘’을 최근 일본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출판했고, 지난 주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판 원제는 ‘미국 제국의 종말(The End of Pax Americana)’.

26일 서강대에서 만난 사카이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분명 히키코모리 내셔널리즘을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48년 전후(戰後) 세계질서는 제국주의 헤게모니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재편되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경제, 정치, 군사력 중 유일하게 군사력만 헤게모니를 장악한 상태죠. 사회가 다양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그 변화를 보고 싶지 않은, 일종의 거부반응 같은 방식으로 민족주의가 분출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지에서 오는 예측불가능성”이다. 사카이 교수는 “미국의 수장 트럼프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신문을 읽기보다 텔레비전 뉴스를 본다. 국무성에도 한반도 전문가가 있지만 그들이 보고서를 낸다고 해도 읽지 않는다. 경제, 정치 헤게모니를 상실한 이 정권이 오직, 군사적 헤게모니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사카이 교수는 포스트모던 이론을 일본 근현대 문헌에 대입하며, 일본의 근대화 민족주의 담론을 분석해왔다. 그 주장에는 서구의 근대 시민사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기 경계 밖의 사람을 타자화(他者化)하는 매커니즘을 갖고 있고, 차별과 배제의 논리 위에서 출발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서구 사상은 제국주의를 통해 비유럽 세계로 전파되고, 서구에 저항하는 주변부 민족주의의 논리 역시 서양 근대의 논리를 모방, 이 담론 틀 속에 포섭된다. 사카이 교수는 “서양이라는 실체가 있고 그에 대항하는 국민의지가 비서양인 주변 측에 있으며, 그 속에 지배ㆍ피지배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서양이라는 헤게모니에 종속돼 작동한다”고 말했다.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헤게모니에 기생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이 헤게모니를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사카이 나오키 코넬대 교수가 26일 서울 신촌 서강대에서 본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사카이 나오키 코넬대 교수가 26일 서울 신촌 서강대에서 본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그러나 이제 미국 패권주의가 흔들리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히키코모리 내셔널리즘’이 등장했다는 진단이다. 사카이 교수는 “미국은 과거 인종, 출신에 의해 계층이 나뉘었지만 이제 학력에 의해 계층이 나뉘고 있다. 세계화와 기술 발달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은 저학력 백인은 불안과 불만을 약자에 투사하며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를 이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후 반세기, 미국에 편승해 성장한 일본 역시 ‘히키코모리 내셔널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카이 교수는 일본 극우 민족주의 시민단체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을 사례로 들었다. “전후 미국의 구상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태평양 국가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때문에 군국주의를 이끈 전범을 청산하지 않은 채 대동아공영권을 재편하는 작업에 이용했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만주국 대신 출신의 A급 전범인데 재판받지 않고 풀려나 총리가 됐고, 이 재편작업을 실질적으로 이끌었죠. 이 정치적 자산을 물려받은 내각은 체제를 바꿀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사카이 교수는 “국가가 아닌 새로운 공동체를 구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주의가 이렇게 상승하는 건 인간이 원자화되는 상황에서 의지할 게 민족, 국가밖에 없어서죠. 문제는 국가가 개개인의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자 등 국가를 뛰어 넘어 공통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공동체가 출현할 때, 소셜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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