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최종 전남도청 진압이 끝난 후 사망한 희생자들의 비참한 모습. 한국일보 기자가 촬영한 미공개 사진이다.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어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여성 피해자의 호소다. 총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입은 다수의 군인들부터 무자비한 성폭행을 당한 기억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그를 따라다닌다.

31일 여성가족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로 구성된 ‘5ㆍ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공동조사단)은 5ㆍ18 당시 계엄군과 수사기관 등이 저지른 성폭행 범죄가 17건, 성추행ㆍ성고문 행위는 45건(중복 제외)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피해자들의 나이와 직업, 성폭행 장소, 가해자의 소속 부대 등 구체적인 정황까지 확인됐다. 국가 차원에서 이 같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동조사단은 올해 5월 5ㆍ18 당시 계엄사령부 수사관들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김선옥(60)씨의 증언을 계기로 관련 고발이 이어지자 6월 출범했다. 이날까지 5개월여간 피해 접수와 면담, 광주광역시 보상심의자료 검토, 5ㆍ18 관련 자료 분석 등을 통해 이러한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5ㆍ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 조사 현황-박구원기자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폭행 피해는 시민군이 제대로 꾸려지기 전인 5월 19일과 21일 사이 발생했고, 장소는 금남로 등 광주 시내에서 광주교도소나 상무대(군부대) 인근인 외곽 지역으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였다. 당시 계엄군의 병력 배치나 부대 이동 경로와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피해자들의 나이는 당시 10대에서 30대 사이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시위대뿐 아니라 이에 가담하지 않은 학생이나 임산부 등 일반 시민들도 다수 포함됐다. 연행ㆍ구금된 여성 피해자들은 수사과정에서 성고문을 비롯한 각종 폭력행위에 노출됐다. 공동조사단은 “여고생이 강제로 군용트럭에 태워져 가는 모습, 사망한 여성의 유방 및 성기가 훼손된 모습을 목격했다는 진술 등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다만 공동조사단은 이번 조사로 가해자를 특정하지는 못했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5ㆍ18 당시 군 부대별 주둔지역, 이동 경로 및 작전 일지와 피해자 진술 등을 종합해 가해자들의 소속 부대까지는 확인했으나, 조사권이 없어 해당 부대의 인사자료에 대해 접근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공동조사단은 이날로 활동을 마무리하고 향후 출범 예정인 5ㆍ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규명위)에 자료를 이관해 추가 조사가 진행되도록 할 방침이지만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진상규명위는 자유한국당이 조사위원 추천을 미루면서 이미 출범하기로 한 시점을 40여일이나 넘기고도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추가 조사가 이뤄져도 당시 투입 병력이 7,300여명에 달해 가해자 특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진상규명위 출범 전까지는 광주광역시 통합신고센터에서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인권위에서 피해자 면담조사를 할 계획이다. 여가부는 피해자 심리치료를 지원한다. 박은정 공동조사단 조사관은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38년 동안 가슴에 묻었던 아픔을 고백하기 위해선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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