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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 작가의 첫 장편 '미스 플라이트'... 자연산 진주 같이 자연스러워

입력
2018.11.01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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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박민정 '미스 플라이트'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인 '미스 플라이트'를 쓴 박민정 작가. 민음사 제공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인 '미스 플라이트'를 쓴 박민정 작가. 민음사 제공

‘미스 플라이트’는 박민정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2009년 등단하고 소설집 두 권을 낸 작가라면 첫 번째 장편소설 출간이 늦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말미에 붙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은 2016년 초고가 쓰여졌고 출간까지 수정과 교정에 1, 2년의 시간이 더 투여되었다. 이처럼 장편소설은 젊은 작가에게는 ‘기회 비용’이 큰 결과물이지만 성패가 불분명하므로 오히려 모험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등단 이래 계속해서 정밀하고 단단한 구조의 중단편 소설을 써오던 작가가, 그것도 확고한 자기세계를 구축하고 개성적인 발화법으로 주목을 받던 젊은 작가가 과연 장편소설이라는 ‘숲’을 어떻게 그려내는가 하는 것이다.

단편소설은 장편소설에 비해 훨씬 더한 압축 가공과 엄밀함, 목표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출 것을 요구 받는다. 바꾸어 말하면 장편소설은 우리의 현실, 삶에 가깝게 표현되고 생명체의 활성과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분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미스 플라이트’는 인공적인 ‘완벽(完璧)’이 아닌, 살짝 ‘이지러진 진주’에 가깝다.

완벽한 진주는 빛깔은 하얗고(내 취향이며 흑진주도 있다) 핑크빛이 살짝 감돌며 두꺼운 진주층으로 보는 사람의 얼굴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매끄럽고 흠이 없으며 광택이 뛰어나다. 크기는 클수록, 모양은 더 이상 둥글 수 없을 정도로 이상적인 구형(Round)일수록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진주는 로봇 조개를 통해 내가 모르는 신물질과 공정으로 합성된 것인가 여길 수는 있을지언정 사거나 소유할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미스 플라이트’는 장편소설답게 다면적이고 다성적이다. 어릴 때부터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약자에 쉽사리 공감하면서도 스스로의 삶과 불화하는 현실에 고통스러워하는 유나, 공군 대령으로 재임하다 방산비리에 관련돼 옷을 벗은 아버지 정근, 어머니 지숙, 남자친구 주한, 정근의 운전병 출신이었다가 유나와 같은 항공사에 재직하며 부기장이 된 영훈 등이 마치 연극무대에 선 배우들처럼 화법과 시점을 바꿔가며 상황 진술을 해나간다. 처음부터 사건의 아귀가 딱딱 맞아 들어가지 않고 실체와 진실은 보일 듯 말 듯 파편화된 말의 늪에서 수면 아래 위를 오르내린다.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간의 불통과 단절, 여기-현재-우리의 거대한 상처구멍을 둘러싼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정황이 정리되지 않은 채 전달되며 소설이 논리 덩어리가 아닌 감정에 기반한 언어임을 새삼 환기시킨다.

‘미스 플라이트’는 한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자연스러워, 바로크 스타일의 천연 진주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적지 않은 산고와 고독한 달리기를 연상케 하면서 결국 좋은 소설은 잘 만들어진 공장 산 소비재나 예능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우리의 감각과 정신을 일깨우는 이런 소설이 있어, 다행이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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