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이 옛 통합진보당 소송과 관련해 일선 법원 재판부에 판결을 바꾸도록 종용하거나 선고를 미뤄 다른 재판부가 맡도록 하는 등 집요하게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공모해 이 같은 일을 벌인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적용하고, 임 전 차장 구속영장 청구서에도 적시했다.
검찰은 2016년 1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당시 광주지법 제1행정부 A 부장판사에게 전화한 정황을 포착했다. 헌법재판소 해산 결정으로 퇴직 처분을 받은 옛 통진당 소속 이미옥 전 광주시의원 등 5명이 2015년 제기한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퇴직 처분 취소소송 선고를 앞둔 시점이었다. 이 전 상임위원은 헌재 결정에 대해 법원이 본안 판단을 내려야 하고, 이 전 의원 등의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는 취지를 전달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등이 고위 간부 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재판부가 이미 청구 인용 결정을 내린 상태여서 법원행정처 의견에 반발하자, 당시 대법원은 선고 연기를 주문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2016년 1월 14일로 예정됐던 선고를 연기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같은 해 2월 법원 정기인사 후 새롭게 재판을 배정 받은 B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취지로 이 전 의원 등의 청구를 기각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같은 해 5월 재판부는 양승태 대법원의 요구와 달리 “지방의원 퇴직은 부당하다”며 청구 인용 결정을 내렸다. B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당시 승진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같은 취지로 소송을 걸었던 이현숙 전 전북도의원 소송에서 청구 인용을 주장했던 양승태 대법원이 기각 요구를 한 배경에 대해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의 환심을 사는데 기각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입장을 바꾼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지난 27일 구속된 임 전 차장을 사흘째 잇달아 불러내 조사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 조사를 위해 서울중앙지검 청사 15층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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