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일정 협의 중” 상황 밝혀… 北, 남북 협력사업에 돌연 무응답
이달 31일로 예정됐던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이 무산됐다. 남북 간 경제협력 분위기 조성에 미국이 거부감을 보이는 상황에서, 북한마저 확답을 주지 않은 것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경협과 무관한 남북 사업에 대해서도 일체 호응을 하지 않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통일부에 따르면 이달 31일부터 사흘간 진행할 예정이었던 개성공단 기업인의 시설 점검은 무산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방북 하루 전인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이 기본적으로는 방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관련 일정을 협의 중이다”면서 10월 방북은 어려운 상황임을 시사했다.
이 당국자는 ‘북쪽과 협의가 안 되는 부분이 미국과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어제(29일) 국정감사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여러 계기로 말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는 조 장관이 전날 국회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의 통일부 국감에서 “미국과 구체적, 세부적인 내용에서 생각 차이가 있다”며 한미 간 불협화음을 인정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은 사실상 개성공단 재가동의 신호탄으로 여겨지는 만큼, 미국은 북한의 유의미한 비핵화 조치 전에 경협을 본격화하는 데 대한 상당한 우려를 정부에 표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제동을 걸었던 북측 철도 현지조사 역시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조 장관은 이날 통일부를 찾은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의 면담 전 모두발언을 통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보조를 맞추는 문제를 협의하게 돼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우회적으로 미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는 일단 미국이 우려하는 일부 남북 합의사안에 대해선 속도조절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협의에 대한 북한의 소극적 태도도 일정이 줄줄이 지연된 원인으로 꼽힌다. 북한은 개성공단 기업인의 시설점검과 철도 공동조사는 물론, 경협과 무관한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 보건의료 및 체육 회담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도 대응을 하지 않거나 미진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주 열기로 돼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19일에는 전종수 북측 소장 대신 황충성 소장 대리가 (남측 소장인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회의를 했고, 26일에는 (천 차관이 개성에) 가서야 (북측 소장이 오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돌연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의도를 두고, 남측이 경협을 놓고 지나치게 미국 눈치를 보는 데 대해 일정 지연 방식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과 동시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등 준비로 인해 여력이 부족해 일정 차질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이 답변은 없지만, (그럼에도) 북한과 긴밀하게 조율을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관련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다만 2년 8개월만의 방북을 고대했던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개성공단 폐쇄 이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는데, (이달 내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던) 방북이 미뤄지는 분위기가 되자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한편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2시간 동안 면담했다. 청와대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 상황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며 “튼튼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정착을 이루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설명했다. 또 “비건 대표와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의견 교환으로 한미 간 상호 입장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양국 공조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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