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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함께 만들고 나누는 콘텐츠의 힘

입력
2018.10.3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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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같은 분야 지인으로부터 다급히 전화가 왔다. 한 콘텐츠 콘퍼런스의 발제를 맡았는데 몸이 너무 아프단다. 마음 건강 전문가는 많지만, 콘텐츠 생산까지 하는 인력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아 큰일이라고 했다.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누군가 추천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행사 당일. 힙합, 요리, 뉴스, 예능 2018년 가장 핫한 콘텐츠를 만드는 연사들 속에, 이미 6년차가 된 중노년기 콘텐츠 생산자로 유일하게 발제를 했다. 무대 인사는 이것이었다.

“우리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은 마음 건강 분야 콘텐츠 중에 가장 유명하다기보다 가장 오래 ‘버틴’ 팀이라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주장 맡을 후배가 없어 은퇴를 못 하는, 플레잉 코치에 가깝달까요?” 청중의 웃음과 달리, 그 인사는 농담이 아닌 진심이었다.

평소, 사람들에게 기억나는 마음 건강 콘텐츠를 물으면 특정 멘토의 이름이나 강연회를 말한다. 사실 스피치 콘텐츠에 가깝다. 또는 ‘이미 사라진’ 무엇을 떠올리기도 한다. 왜 이렇게 드물까? 일반적으로 콘텐츠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입소문과 동시에 대중의 반응이 오며 상승곡선을 그린다. 그런데 마음 건강의 경우는 ‘제발, 한 번만,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가 피드백이다. 질이 높을수록 하루에 수백, 수천 통의 외면할 수 없는 절절한 편지가 온다. 성장의 상승곡선이 시작되는, 타 콘텐츠에서는 가장 기쁘고 신날 단계가 대부분의 마음 건강 콘텐츠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창작자의 정신 붕괴가 일어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2013년 내게도 그 순간이 있었다. 환자로서 나의 우울증 치료기를 블로그에 올렸을 뿐인데 콘텐츠로 받아들여지고, 어느 날부터 매일 100여명 이상의 청춘들이 제발 들어 달라고 편지를 보내왔다. 중압감이 극한에 달해 그만둬야겠다고 공지했을 때, 콘텐츠 구독자였던 많은 청춘이 역으로 나를 상담해 주었다. 대략 60통의 메일이 온 기억이 난다. ‘크진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해서…’라고.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편지 끝에는 어김없이 ‘어? 쓰다 보니 나한테 필요한 말이네?’라는 문장이 있었다.

우연히 ‘수혜자’들이 ‘조언자’로 역할을 바꾸어 본 순간, 자신 내면에 ‘생각보다 현명한 사고들’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타인을 돕기 위해 써 내려간 문장을 자기에게 다시 적용해 보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거울 효과’와 ‘자생력의 발견’이다. 그 사건 하나가, 수많은 콘텐츠의 생몰 사이에서도 2018년까지 버텨 낸 힌트가 되었다.

창작자와 수용자가 사라지고 조언의 시혜자와 수혜자를 나누던 이전 세대의 규정이 사라지는 순간, 역설적으로 모든 청춘에게 씨앗이 자라났다. 토로하는 이들은 위로를, 어설프게나마 조언을 건네보는 이는 자기도 몰랐던 자생력을, 마지막으로 콘텐츠 생산자는 더는 ‘내가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의 해방과 지속 가능성을 발견한다. 지금껏 타인의 성공담에 박수 쳐야 하는 청중의 역할만 부여받던 청춘들에게, 앞으로는 다른 콘텐츠가 점점 더 필요해지지 않을까? 평범한 이들이 모여 서로 고민을 말하고, 들어주고, 조언하는 경험. 그 안에서 기존의 인식과 역할 모델을 허물어 가는 시도를 담은 콘텐츠들 말이다.

오늘도 이메일을 받는다.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 또래 청년들의 마음을 돌보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창업이나 창작을 하고 싶다’고. 먼저 시작한 청년이니 비법 좀 알려 달라고. 여느 때처럼 조심스레 조언을 건넸다. 빨리 유명해지기보다, 오래, 그리고 ‘내 마음부터 건강히’ 쭉 그 자리에 존재할 방법을 고민하자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보다,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마당을 만들지 않겠냐고.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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