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당시 아기를 업고 다니다가 아무 이유 없이 잡혀갔다. 아무 설명도 없었다. 배에 태워져 가전 중에 아기가 죽었다. 죽은 아기를 목포 길거리에 두고 온 생각만 하면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평생의 한이 이번 재판에서 풀렸으면 한다.”
제주 4ㆍ3사건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형무소에 수감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수형 생존자인 오계춘 할머니(93)는 29일 오후 3시 제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70년 만에 이뤄지는 재심 첫 공판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평생 마음 속에 묻어왔던 아픔을 털어 놓았다. 이날 오 할머니와 함께 재판을 받기 위해 4·3수형 생존자 18명은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해 힘들게 법원 정문으로 걸어왔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제주법원이 지난 9월 3일 이들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이날 70년 만에 정식 재판을 다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4ㆍ3수형 생존자들은 4ㆍ3사건 당시 구속영장 없이 임의로 체포됐고, 재판절차 없이 전국 각지 형무소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4ㆍ3 당시 군사재판을 받은 사람은 2,530명으로, 이들은 형무소로 이송된 이후에야 자신의 죄명과 형량을 통보 받고 형을 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상당수가 불순불자라는 이유로 사형되거나 행방불명됐다.
이에 4ㆍ3수형 생존자 18명은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해 4월 19일 제주지법에 4ㆍ3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고, 5개월여 만에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재심 청구사건에 대해 첫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부는 세차례 심문 기일을 진행한 후 연말이나 내년 초쯤 최종 선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4ㆍ3수형 생존자들의 재심 청구를 도왔던 양동윤 제주4ㆍ3도민연대 대표는 “재심 개시를 결정한 재판부는 수형 생존자들의 눈물어린 진술을 끝까지 진지하게 경청해 줬다”며 “70년이 지났다. 이번 재심도 더 이상 늦지 않도록 조속한 판결을 간곡하게 바란다”고 당부했다.
청구인들의 법정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번 재심에서 중요한 것은 피고인인 18명의 범죄사실을 검사가 특정해야 하지만, 이분들이 어떤 범죄를 지었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며 “하루빨리 수형 생존자들에 대한 확정판결이 이뤄져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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