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바하르’는 이란 남동부에 있는 항구다.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과 접한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인도가 앙숙인 파키스탄을 거치지 않고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해 교두보로 삼은 곳이다. 사방이 육지로 막힌 아프가니스탄도 차바하르를 통한 해상 운송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막대한 운송료를 챙겨온 파키스탄을 배제하려면 인도와 아프간에 이 항구는 전략적 요충지인 것이다.
실제 인도는 파키스탄을 우회하기 위해 이란의 외딴 항구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 2016년 5월 수천억 원을 들여 차바하르항 개발에 합의했다. 지난해 12월 1단계 공사를 마쳤고, 이후로도 규모를 키우며 공을 들이고 있다. 아프간도 합세했다. 차바하르항에 실려온 11만톤의 밀과 2,000톤의 종자, 각종 대형 차량이 아프간 재건사업에 쓰였다.
차바하르는 파키스탄과 손잡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를 견제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동쪽으로 72㎞ 떨어진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을 중국이 개발해 향후 40년간 운영권을 챙겼다. 심지어 군함 배치까지 추진하며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맞서는 상황이다.
이처럼 주가가 치솟던 차바하르가 내달 5일 미국의 이란 제재 시행을 앞두고 애물단지가 될 참이다. 미국이 여러 우방국의 팔을 비틀어 이란의 원유 수출을 틀어막은 판에 그냥 두자니 제재의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옥죄자니 인도와 아프간을 거점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미국의 중동 전략에 차질을 빚는 탓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차바하르 같은 주요 시설을 차단하는 것이 이란 제재의 핵심”이라며 “미국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전했다.
차바하르에 목을 매던 인도와 아프간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란을 포함한 3국은 지난 수개월간 상대국을 오가며 릴레이 고위급 회담을 열고 돌파구를 논의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인도가 미국을 향해 제재 면제를 거듭 요청하는데도 미국은 시큰둥하다.
미국의 ‘이란 제재법’은 아프간 재건 지원사업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를 면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미 정부는 이란 제재 시행이 임박했는데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미룰 상황도 아니다. 아프간이 다시 흔들린다면 지난 16년간 주둔해온 수천 명의 미군은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지 기약하기 어렵다. WSJ은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차바하르가 폐쇄된다면 아프간은 다시 파키스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는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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