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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고통스럽지만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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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고통스럽지만 가야 할 길”

입력
2018.10.29 18: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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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 생태계 흔드는 공유경제 확산 

 일자리 급감 無人시대 이미 시작돼 

 기본소득ㆍ로봇세 논의 본격화해야 

자본주의 역사는 신기술의 등장과 기존 산업의 몰락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전기가 증기기관을 대체하는데 100년이 걸렸지만, 스마트폰은 10년도 안 돼 세상을 바꿔놓았다. 모바일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플랫폼 혁명은 노동의 종말이 일상화한 시대를 만들고 있다. 사진은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카풀 서비스 반대 구호를 외치는 모습. /배우한 기자
자본주의 역사는 신기술의 등장과 기존 산업의 몰락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전기가 증기기관을 대체하는데 100년이 걸렸지만, 스마트폰은 10년도 안 돼 세상을 바꿔놓았다. 모바일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플랫폼 혁명은 노동의 종말이 일상화한 시대를 만들고 있다. 사진은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카풀 서비스 반대 구호를 외치는 모습. /배우한 기자

자동차만큼 돈 많이 드는 문명의 이기도 드물다. 소유에 목돈이 필요하고 기름값, 주차비, 보험료, 자동차세 등 쉴 새 없이 주머니를 털어 간다. 화수분이라도 모자랄 정도다. 가성비는 꽝이다. 출근 때 가져간 차는 종일 주차장에 세워져 있기 십상이다. 영국 자가용들을 조사했더니, 하루 평균 22시간 넘게 서 있었다. 차를 움직이는데도 돈이다. 미국인은 연간 70억 시간을 길에서 허비한다(생산성 손실 약 185조원). 차량공유 서비스가 등장한 배경이다.

‘우리는 낯선 사람들의 자동차에 올라타고(리프트ㆍ사이드카ㆍ우버), 남는 방으로 낯선 이들을 맞아들이며(에어비앤비), 반려견을 낯선 이들의 집에 맡기고(도그베이케이ㆍ로버), 낯선 이들의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피스틀리). 우리는 생판 모르는 이들에게 우리의 귀중품과 개인적 경험, 나아가 우리의 삶 그 자체를 맡긴다.’(‘플랫폼 레볼루션’에서)

자동차나 집을 직접 소유하는 게 버겁고 귀찮은 시대가 오고 있다. 바야흐로 소유가 아닌 공유의 시대다. 공유의 이점은 상상외로 크다. 예컨대, 곧 등장할 자율주행차를 공유하면 자가용 10대를 대체할 수 있다. 시장은 이미 반응을 시작했다. 방 한 칸 없는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293억달러(약 33조원). 세계 1위 호텔기업 힐튼의 기업가치를 뛰어넘었다. 상장 준비 중인 우버의 기업가치는 1,200억달러(137조원)로 추산된다. 미국 빅3 자동차 제조업체(GMㆍ포드ㆍ피아트크라이슬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플랫폼 혁명의 결과다.

국내 택시업계가 카풀 서비스에 결사 항전 중이다. 차량 공유가 확산되면 27만개 일자리가 사라진단다. 괜한 엄살이 아니다. 신기술은 고용에 우호적이지 않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당시 최고의 직업 필경사를 금세 실업자로 만들었다. 포드 자동차의 대량생산은 미국 인구 4분의 3을 점하던 농부들을 불과 30년 새 공장 노동자와 사무원으로 바꿔놓았다. 카풀은 단순히 소비자 편익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생태계를 뿌리째 흔드는 혁신 쓰나미다.

40년 전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컴퓨터 기술의 진보가 ‘노동의 종말’을 초래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145년 역사의 미국 1위 서점 반스앤드노블과 126년 전통의 백화점 체인 시어스를 쓰러뜨렸다. 18세기에 설립된 백과사전의 대명사 브리태니커도, 필름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코닥도, DVD 대여점 블록버스터도 디지털 물결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증기기관과 전기와 컴퓨터가 세상을 집어삼켰듯이, 모바일 소프트웨어가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보다 기술 변화가 훨씬 빠르고 고용에 더 위협적이다. 가히 노동의 종말이 일상화한 시대다. 무인차의 등장은 현재 10억대 넘는 자가용을 2050년쯤 3억대 수준으로 감소시킬 전망이다. 자동차제조ㆍ보험ㆍ리스업 등 기존 산업을 붕괴시키고 운전기사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다.

신기술은 인류에게 도전이자 기회다. 기존 산업의 저항은 늘 실패로 끝났다. 역사가 증명한다. 19세기 초 베틀로 직물을 짜던 가내수공업 노동자들이 방직공장을 불태우며 거세게 저항했지만 산업자본주의의 도래를 막지 못했다. 리프킨은 IT 혁신에 따른 대량 실업이 제2의 기계파괴운동을 초래할 것으로 봤지만, 세상은 진즉 모바일의 손아귀에 갇혔다.

구글처럼 플랫폼을 장악한 공룡기업의 등장으로 불평등은 커지고 일자리는 급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플랫폼 혁명에 눈감으면 한국 경제는 언제 고사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 김동연 부총리가 토로한 대로 “고통스럽지만 안 갈 수 없는 길”이다. 기존 산업의 몰락은 기본소득 등을 통해 풀어야 할 숙제다. 플랫폼 기업에 집중된 이익을 사양산업 노동자의 전직 훈련과 사회안전망 강화에 투입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 없는 세계로 열린 길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그 길이 우리를 기술 천국의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인지, 무서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리프킨)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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