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에이모 톨스(Amor Towles)의 매혹적인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에는 스탈린 사후 크렘린 권력 투쟁의 삽화 한 편이 등장한다. 그해 6월 최고간부회의 및 각료이사회 공동 만찬에서 흐루쇼프가 기획한 이벤트다. 붉은 광장을 사이에 두고 크렘린을 마주보고 있는 유서 깊은 메트로폴 호텔 연회장. 만찬 막바지인 밤 11시 정각, 촛불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크렘린 창들을 포함한 모스크바의 모든 불빛도 사라진다. 그러다 문득 저 먼 귀퉁이서부터 밝아지며 도시 전체가 환해진다. “세계 최초 핵 발전소”인 오브닌스크 발전소가 그렇게 전면 가동을 시작했다. 국가만찬의 저 피날레가 실제인지는 알 수 없고 핵분열 발전은 미국 테네시의 오크리지 원자로가 먼저(1948년)였지만, 흐루쇼프는 어쨌건 경쟁자 말렌코프 등을 누르고 권력을 장악한다. 그는 쇼에 능한 정치인이었다.
흐루쇼프는 1961년 10월 30일 전 세계를 상대로 사상 최대의 ‘쇼’를 연출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라 불리는 수소폭탄 ‘차르 봄바(Tsar Bomba)’의 성능 실험이었다. 길이 8m 지름 2m에 무게만 27톤에 달하는 차르봄바의 위력은 TNT 50 메가톤. 2차대전 소모 화약 전량의 10배에 달하는 에너지, 히로시마-나가사키 핵폭탄을 합친 것보다 1,500배 강한 폭발력이었다.
관측기와 함께 콜라반도 올레냐 군 기지를 이륙한 특수 개조 폭격기(Tu-95)는 오전 11시 32분(모스크바 시각) 북극해 노보야 제믈랴제도의 미튜시카만 핵실험장 1만500m 상공에서 ‘차르 봄바’를 투하했다. 폭탄은 고도 센서로 지상 4,000m 지점에서 폭파되도록 설계됐고, 폭격기가 안전지대까지 벗어날 시간을 벌기 위해 무게 800kg의 초대형 낙하산까지 장착됐다.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인류는 사상 최대 죽음의 버섯구름(높이 60km, 폭 40km)을 관측했다. 그라운드 제로 바깥 100km 지점의 사람이 3도 화상을 입을 정도의 열이 발생했고, 후폭풍에 1,000km 떨어진 핀란드의 유리창이 깨질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당 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후 소련은 핵전력 경쟁에서 미국과 대등하거나 앞선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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