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최은진 노래ㆍ수류산방 기획
수류산방 발행ㆍ288쪽ㆍ2만8,000원
이것은 책으로 만든 앨범이자, 음반이 수록된 책이다. 글을 읽어야 음악이 이해되고, 음악이 흘러야 글이 존재 이유를 얻는다. 그렇게 음악과 글은 한 몸이 된다. 아리랑 소리꾼, 연극배우, 문화공간 아리랑의 주인장 등 여러 이름을 가졌지만 그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야 온전하게 설명되는 예인 최은진, 그녀처럼 말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음반에도, 책에도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이름이 붙었다. ‘헌법재판소’. 참으로 최은진다운 작명이 아닐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최은진의 세 번째 앨범이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간드러지는 콧소리로 불러야 제 맛인 ‘오빠는 풍각쟁이’를 70년 만에 리메이크해 1930년대 만요(漫謠) 붐을 일으켰던 최은진이 이번에는 근대 가요를 새롭게 해석했다. 옥두옥의 ‘청춘 블루스’, 이난영의 ‘고향’, 영화 ‘길다’의 수록곡을 번안한 ‘아마다미아’, 백년설의 ‘아주까리 수첩’, 남인수의 마지막 히트곡 ‘무너진 사랑탑’, 정원의 ‘흑자 청춘’ 등 1940~1960년대 근대 가요 7곡과 최은진이 만든 신곡 3곡이 앨범에 수록됐다. 젊은 인디 뮤지션 ‘김현빈과 293’이 옛 노래에 전자 사운드와 세련된 비트를 입혔고,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최은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사운드와 비트 사이를 유영한다.
‘헌법재판소’는 수류산방이 기획한 ‘아주까리 수첩’ 시리즈의 한 책이다. 최은진이 리메이크한 곡마다 원곡 정보와 근대음악연구자 이준희의 해설을 싣고, 노래의 테마와 이어지는 시와 소설, 칼럼, 비평 등을 곁들여 상상력을 무한히 뻗어갈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아주까리 수첩’에는 ‘근대 가요에 나타난 ‘아주까리 꽃 따는 섬’의 모티브’라는 연구 논문의 일부를 싣고, ‘청춘 블루스’에는 청춘의 단상을 이야기하는 ‘잔혹한 성인식’이라는 칼럼을 곁들이는 식이다. 최은진이 작사 작곡한 신곡 ‘양구’에는 소설가 계용묵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수필과 강원 양구 출신 화가 박수근의 편지 등이 보태져 감상을 이끈다. 월북한 근대 문학 작가부터 문학평론가 황현산, 김인환, 소설가 윤후명, 시인 이우성, 조병준 등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필자들의 글이 알차게 담겨 있다. 근대 작사가, 작곡가, 가수 등을 소개하는 68개 주석도 빼놓지 말고 꼼꼼히 읽자.
그런데 왜 이름을 ‘헌법재판소’라 지었을까. 사람들이 찾아드는 최은진의 문화공간은 헌법재판소 옆 골목에 있다. 헌법재판소는 최은진의 인생을 은유하는 한 단어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의 변혁을 상징하는 장소다. 그렇게 최은진은 옛 노래로 지금 시대와 공명한다. 앨범에는 그가 작사한 동명 신곡도 수록됐다.
이 책, 이 앨범을 펼치기 전에 서랍 구석에서 먼지 쌓인 채 잠자고 있을 CD플레이어부터 찾아 놓자. 음원사이트 스트리밍 말고 CD로 들어야 ‘풍각쟁이’ 최은진의 맛깔스러운 노래가 더 잘 들린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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