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월드시리즈 2차전 패… 만루 상황 교체 매드슨이 3점 내줘
한국인 투수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31ㆍLA 다저스)은 5회말 2사 1ㆍ2루에서 직감했다. 타석에 선 앤드류 베닌텐디(보스턴)가 마지막 상대 타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신중했다. 어떤 코스에, 어떤 구종을 던질지 심사숙고 했다. 투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타석의 베닌텐디도 물러서지 않았다. 2볼-1스트라이크에서 주심에 타임을 요청, 템포를 끊었다.
4구째 류현진의 선택은 이날 가장 자신 있는 커브였다. 커브는 스트라이크 존을 관통했다. 2볼-2스트라이크의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 류현진은 5구째를 앞두고 포수 오스틴 반스의 사인에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반스를 불러 직접 사인을 냈다. 하지만 류현진이 택한 5구째 몸쪽에 붙인 직구는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
풀카운트에 몰린 류현진은 6구 커브, 7구 커터로 승부를 걸었고 베닌텐디는 파울로 커트했다. 뜻대로 승부가 풀리지 않자 류현진은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8구째 직구는 전혀 제구가 되지 않았고 원 바운드 돼 포수 뒤로 빠졌다.
무려 6분여 걸린 둘의 투타 대결은 다저스와 보스턴의 운명을 바꾸는 순간이 됐다. 2-1로 앞선 다저스는 5회말 2사 만루에 몰리자 우타자 스티브 피어스 타석 때 좌완 류현진을 내리고 우완 불펜 라이언 매드슨을 올렸다. 매드슨은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의 ‘믿을 맨’이다.
69개 밖에 던지지 않은 류현진을 일찍 내리고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로 매드슨을 올린 로버츠 감독의 ‘도박’은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됐다. 매드슨은 밀어내기 볼넷에 이어 J.D. 마르티네스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맞았다. 류현진의 책임 주자가 모두 홈으로 들어오면서 1점에 불과했던 자책점은 4점으로 늘었다. 팀도 재역전에 실패해 2-4로 졌다.
다저스는 2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월드시리즈(7전4승제) 2차전마저 내주고 원정 2패로 수세에 몰렸다. 밀워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4⅓이닝 2실점)과 6차전(3이닝 5실점)에서 부진했던 류현진은 이날 자존심 회복을 위해 이를 악물고 던졌다. 5회 2사까지 1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 요건까지 아웃카운트 1개 만을 남겨놨던 그는 하지만 2사 후 9번 타자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에게 1볼-2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카운트를 잡고도 4구째 안타를 허용해 어렵게 경기를 풀어갔다.
이후 1번 무키 베츠의 안타로 2사 1ㆍ2루가 되자 릭 허니컷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류현진을 다독였으나 베닌텐디에게 이날 첫 볼넷을 주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김병현(애리조나), 박찬호(필라델피아)에 이어 세 번째, 선발 투수로는 한국인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나간 류현진의 첫 등판 성적은 4⅔이닝 6피안타 4실점이다. 류현진은 다저스가 시리즈를 6차전까지 끌고 갈 경우 한 차례 더 등판이 가능하다.
경기 후 류현진은 “이닝을 끝낼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제구가 좀 더 좋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베닌텐디에게 볼넷을 내준 것을 아쉬워했다. 조기 강판에 대해선 “교체는 벤치의 생각”이라며 “선수는 그 상황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언론은 로버츠 감독의 용병술에 비난을 쏟아냈다. CBS스포츠는 1차전에도 클레이튼 커쇼를 구원 등판했다가 실점을 허용한 매드슨의 투입에 대해 “내가 로버츠였다면 결정적인 순간에서 매드슨을 믿을 수 있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는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려 했던 로버츠가 엉뚱한 전선을 잘랐다”며 실패한 투수 교체를 꼬집었다. 로버츠 감독은 “매드슨이 등판할 시기였다”며 “그는 중요한 순간 계속 공을 던졌다”고 강조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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