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영민 소위 형 영우씨, 국민권익위원회에 탄원 결실
1982년 9월 22일 새벽 강원 양구군 21사단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김영민(당시 23) 소위가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서강대 학군단(ROTC)을 거쳐 임관한 지 6개월, 21사단 일반전초기지(GOP) 중화기중대 소대장으로 배치된 지 3개월 만이었다.
김 소위의 형 영우(당시 26)씨는 사망 직후 가족과 함께 21사단을 방문해 동생 시신을 확인했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총상 외에 얼굴 한쪽에 깊은 상처가 나있었고, 왼쪽 정강이에는 움푹 파인 자국이 있었다. 군홧발에 차여 생긴 일명 ‘조인트 자국’이 분명했다. 이 사실을 즉시 군에 알렸지만 당시는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군은 별도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채, ‘단순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뜻이었다.
영우씨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망 당시 김 소위 주머니에서 발견된 건 유서가 아니라 직접 작성한 당일 근무시간표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 들고 다닐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21사단을 찾은 날 저녁 김 소위 동기들이 찾아와 “절대 영민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리 없다. 우리도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고 한 말 역시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군부독재가 끝난 뒤에도 진상 규명 요구 때마다 돌아온 건 “너무 오래된 사건이다” “당시 기록은 전산화가 돼있지 않아 곤란하다”는 답뿐이었다.
반전은 지난해 7월 영우씨가 국민권익위원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권익위는 1년간 김 소위가 군복무 시절 작성한 일기와 주고받은 서신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주변 사람들을 만났다. 사망 이틀 전 일기에는 ‘나도 침묵을 지키면 동조자가 된다. 최후통첩을 했다’는 내용이, 서신에는 ‘정의와 양심은 타인에 의한 자살 신청서나 다름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어 군 내에서 심한 갈등을 겪었음이 드러났다. ROTC 선후배나 지인들은 “(고인이) 책임감이 있고, 평소 부하를 아꼈다”고 입을 모았다.
권익위는 올 7월 국방부에 “김 소위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최전방 부대 소대장이 초소 근무 중 사망한 점 △당시 시신에 난 여러 상처나 현장에 대한 초동 조사가 미흡했던 점 △사망 전 부대 상관과 갈등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단순 자살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국방부는 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김 소위를 ‘경계 등 직무수행 중 사망한 사람’으로 판단, 순직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진실 규명을 위한 영우씨의 노력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상관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사망 당시 왜 동생이 혼자 경계근무를 섰는지도 설명이 안 됐습니다. 철저한 재수사를 이뤄내고 말 겁니다.” 한숨 돌린 형의 또 다른 여정이 곧 시작될 참이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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