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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수상자도 황당했다, 대종상 올해도 '대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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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수상자도 황당했다, 대종상 올해도 '대충상'

입력
2018.10.23 16:49
수정
2018.10.23 20:4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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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상 수상자 호명하자 관계없는 가수가 대신 받아

“이런 시상식 왜 하는지 모르겠다” 폐지 여론 거세

"가수 겸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사랑씨가 22일 열린 제55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남한산성'의 사카모토 류이치를 대신해 음악상을 받으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가수 겸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사랑씨가 22일 열린 제55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남한산성'의 사카모토 류이치를 대신해 음악상을 받으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시상식도 대충, 수상자(작) 선정도 대충이라고 하여 ‘대충상’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온 대종상 영화제(대종상)가 올해도 미숙한 운영으로 파행을 빚었다. 후보자 및 수상자가 대거 불참해 대리 수상이 잇따랐고, 심지어 수상자와는 아무 관계 없고 수상자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인사가 해당 영화의 제작자를 제치고 트로피를 대신 받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대종상이 내세우는 55년 전통과 권위는 이제 바닥까지 추락해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대종상 시상식은 2시간짜리 촌극이었다. 수상자와 시상자는 물론 생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도 민망해지는 상황이 줄곧 연출됐다. 주요 부문 중에서 직접 참석한 수상자는 신인남우상 이가섭(’폭력의 씨앗’)과 신인여우상 김다미(‘마녀’), 남우주연상 이성민(‘공작’), 감독상 장준환(‘1987’), 최우수작품상 이준동(‘버닝’) 파인하우스 대표뿐이었다. 심지어 대리 수상자가 없어서 사회자인 배우 신현준이 두 차례나 트로피를 대신 받아야 했다. 무대에서 수상자가 호명될 때마다 생중계 카메라는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몰라 객석을 하염없이 방황했다.

가장 큰 논란이 된 건 음악상 대리 수상자다. 영화 ‘남한산성’ 제작에 참여한 일본의 세계적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가수 겸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사랑씨가 무대에 올라갔다. ‘남한산성’ 제작자인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가 객석에서 나오다가 당황하며 다시 돌아가는 모습이 생중계로 전파를 탔다.

‘남한산성’은 음악상 외에도 조명상과 촬영상을 받았다. 나머지 두 부문도 영화와 무관한 인사가 대리 수상자로 내정돼 있었다. 김 대표는 촬영상 수상 때 직접 무대에 올라가 어수선한 상황을 수습했지만, 대리 수상자가 가져간 조명상 트로피는 23일 오후까지 행방이 묘연했다. 대종상 주최측은 논란이 일자 “트로피는 한국영화조명감독협회가 보관 중이고 수상자인 조규영 감독에게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대표는 “제작자가 시상식에 참석했는데도 영화와 무관한 사람이 대리 수상을 하고 감사 인사를 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다”며 “상을 받고도 당황스러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무대 난입이라는 오해까지 산 한사랑씨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사랑씨는 올해 대종상을 주최한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대리 수상을 부탁해 시상식에 참석했다. 대종상 관계자에 따르면 시상식 운영 팀과 생중계 팀도 음악상 대리 수상자가 한사랑씨라는 사실을 사전에 공지 받았다고 한다. 시상식에 참석한 제작자를 두고 영화와 무관한 인사를 섭외해 무대에 올린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양측 모두를 곤경에 처하게 한 셈이다. 한사랑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상식 전)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영화 ‘마지막 황제’(1987)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하고 뉴에이지 음악의 대가로 꼽히는 사카모토에게 대종상 주최측이 상을 주면서도 큰 결례를 저지른 것이다.

'남한산성'으로 대종상 음악상을 받은 사카모토 류이치. 씨네룩스 제공
'남한산성'으로 대종상 음악상을 받은 사카모토 류이치. 씨네룩스 제공

◆논란의 대종상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14관왕 몰아주기 논란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시나리오상, 촬영상, 조명상, 음악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영상기술상, 음향기술상, 기획상)
2013년 권동선 전 조직위원장, 사단법인 대종상 영화제 및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상대로 대종상 영화제 개최금지 가처분 신청
2015년 조근우 대종상 사업본부장 “대리 수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상식에 나오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겠다” 발언 논란, 영화인 보이콧 사태
‘국제시장’ 10관왕 심사 공정성 논란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시나리오상, 촬영상, 녹음상, 편집상, 첨단기술특별상, 기획상)
2016년 남녀주연상 후보 총 11명 중 이병헌만 참석, 후보자 대거 불참 사태, 신인여우상 수상자 김환희 3차례 대리 수상
2017년 시상식 생중계 도중 스태프 막말 삽입 방송사고

대종상 조직위원회는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23일 공식입장을 내고“제작사와 연락이 닿지 않아 ‘남한산성’의 음악상과 촬영상의 대리 수상자를 각 협회(한국영화음악협회, 한국촬영감독협회)의 추천을 받아 선별했다”며 “‘남한산성’ 제작사 김지연 대표의 행동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운영상의 미숙을 사과하기보다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영화의 제작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쏜 꼴이다. 한국영화음악협회와 한국촬영감독협회는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산하 협회다. 영화계에서 한국영화음악협회는 실체가 없는 단체로 여겨진다.

영화상 시상식은 한 해 영화계를 결산하고 격려하는 축제의 자리다. 그러나 대종상은 최근 몇 년 간 배우와 감독, 스태프 등 영화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올해 대종상을 현장에서 지켜본 한 영화 관계자는 “대종상이 공정성과 권위를 잃은 지 오래인 데다 해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으니 영화인들도 대종상 수상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뿐더러 시상식 참석조차 꺼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종상은 오래 전부터 여러 논란을 겪으면서 매해 개혁과 새로운 출발을 천명해 왔다. 올해는 심사위원을 사전 공개하고 생중계로 심사표를 발표하는 등 심사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영화계 신망이 높고 전문성 있는 인사들로 심사위원단이 구성돼 기대를 모았다. 수상 결과도 대체로 무난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미숙한 운영으로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고 또 다시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다. 영화계에서는 이번 시상식을 계기로 대종상 폐지 여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이런 시상식을 왜 하는지 모르겠고, 정말 모든 걸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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