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서도 안 하겠다는 두발 검사를 대학에서는 하네요.”
경기 소재 한 대학 간호학과에 다니는 김모(20)씨는 다음달 열리는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연습할 때마다 조교들이 두발 검사하는 건 기본, 타고난 머리카락이 갈색인 친구에게는 이유 불문하고 검은색으로 염색하라고 다그치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씨는 “집중해야 한다며 개인물품을 압수해가고, 대중교통이 끊긴 밤 늦게까지 연습하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이 시간에 공부를 더하는 것이 간호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나이팅게일 선서식은 병원 임상실습을 앞둔 간호학과 2, 3학년생이 간호사 윤리와 원칙, 헌신을 공개 맹세하는 의식이다. 간호사로서 첫 시작을 알리는 뜻 깊은 자리를 두고 최근 예비 간호사들의 한숨이 늘고 있다. 장기간 준비, 사생활 통제 등 과정 자체가 고역이고 외부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 허례허식이라는 것이다. 일부 대학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거나 공감하는 학생들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주장이 눈에 띈다. 선서식 당일뿐 아니라 준비기간 내내 매일 같이 두발 길이, 액세서리 착용 여부, 구두 높이, 화장 방식 등 지나치게 용모 검사를 받고 있다는 것. 15일부터 선서식 연습을 하고 있다는 A(20)씨는 “선배들이 2학년 학생을 줄줄이 세워놓고 선서식 당일 입을 실습복의 치마 길이까지 따지고 있다”며 “예쁘다 아니다 같은 외모 평가도 막무가내라 수치심이 들 정도”라고 했다. 오랫동안 연습을 하는 것도 고통이라고 얘기한다. 많은 학교에서 기간을 단축하고 있지만, 몇 주간 예행연습을 하는 곳도 심심치 않다. 학생들은 이 기간 개인 일정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저녁마다 보습학원에서 생활비를 버는 간호학과 이모(21)씨는 “아르바이트 역시 개인 일정이라 연습 불참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통보를 학교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후배들도 불만이다. 몇몇 학교는 새내기까지 행사에 전원 투입해서다. 선배들이 받는 각종 규제와 제한은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경기 의정부시 소재 대학 간호학과 조모(22)씨는 “선배가 복장이 불량하다고 혼내면서 옷 입은 사진을 찍어서 메신저로 보내라고 했다. 행사 때 인사나 행동을 똑바로 하라고 수 차례 지적도 당했다”고 말했다.
물론 나이팅게일 선서식의 진정한 본래 의미를 새겨야 한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허례허식이라는 이름으로 생명 존중을 다짐하는 선서식의 참뜻이 퇴색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간호대학 교수는 “병원 실습 전 마음가짐을 되새기며 사람들 앞에 선서하는 것이 나이팅게일 선서의 취지”라며 “불필요한 행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일부 대학의 선서식에 지역 유지들이 오면서 학교가 지나치게 이를 의식하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선서식 규율이 더 강했고, 현재는 개선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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