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악인을 심판하는 올바른 방법

입력
2018.10.23 20:00
30면
0 0
22일 오전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 앞 흉기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아르바이트생을 추모하는 공간에 한 시민이 국화와 쪽지를 놓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 앞 흉기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아르바이트생을 추모하는 공간에 한 시민이 국화와 쪽지를 놓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알려지게 된 김성민(당시 34세)의 20대 여성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서울 서초구 유흥가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희생자를 기다렸고, 화장실 문을 연 첫 번째 여성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이후 붙잡힌 김씨는 프로파일러들로부터 ‘망상으로 인해 여성으로부터 피해를 입는단 생각을 해왔고,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김씨의 징역 30년형이 확정됐다. 법정에서 “내가 인기가 많은가 보다”라고 말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그에겐 어쨌든 60대 이후 삶이 온전히 남겨진 셈이다.

2년 전 세상을 흔들었던 이 사건은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PC방에서 스무 살 남성을 등산용 칼로 무참히 살해한 김성수(29)의 범행과 닮은 부분이 있다. 당국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지 확신할 수 없다지만 두 사건의 가해자들에겐 공히 심신미약, 즉 이성을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건강하지 않다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그리고 PC방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전 말다툼을 벌이긴 했지만 두 사건의 피해자 모두 ‘그날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죽었다. 두 사건을 묶는 이들 공통점은 뛰어난 치안력을 갖춰 ‘범죄는 피할 수 있다’고 자신할 만했던 우리 사회의 안전판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젊은 생명을 터무니없이 앗아간 두 사건을 놓고, 우발이건 계획된 악행이건 혹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해자에 의한 행위였건 간에 유사범행을 막아낼 위하력(威嚇力)을 제대로 발휘할 처벌이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7일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심신미약을 이유로 강서구 PC방 사건의 처벌이 경감되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국민 청원은 엿새만인 23일 100만건에 가까운 동의를 얻었을 정도다.

이처럼 사회가 막아설 길 없는 강력 범죄가 줄줄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극약 처방으로서 사형제도의 기능을 고민하기 마련이다. 죽음의 공포로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사형제가 강력 범죄를 제어할 정도로 효능을 보인다고 하긴 힘들다. 형법은 제250조 1항에서 살인에 대한 처벌 방식으로 사형을 명시하고 있지만 작량감경(酌量減輕), 즉 범죄 정상에 참작할 사유가 있을 때 유효한 형 감경 조항(형법 제53조)도 작동한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지난달 초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처럼 살인범들이 사형수의 굴레를 벗어나는 경우는 적지 않다. 더구나 1997년 12월 23명에 대해 집행이 이뤄진 후 사형제는 실제 처벌이 아닌 허울로만 존재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형제의 날을 벼린다고 해서 제2의 강서구 PC방 사건이 막아지리란 기대가 커질 수 없는 노릇이다.

세계 사형 폐지의 날(10월 10일)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았던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강력 범죄에 제동을 걸 대체 형벌(예를 들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한다는 조건 아래 설문 대상자 67%가 사형제 폐지를 찬성한다는 내용이다. 실제 집행이 없고 감형이 잦아 잔혹 범죄를 억제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사형폐지로 인권국가의 위상을 차지하면서 현실적인 대체 형벌을 만들자는 것이다. 9인체를 이룬 헌법재판소에서도 사형제 위헌 여부 판단과 관련해 “사형제가 흉악범죄를 막을 수 있는지를 검증했으면”(이종석 신임 재판관)과 같은 눈길을 끄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악인을 제대로 심판할 수 있는 올바르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양홍주 기획취재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