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까지 개최된 남북 간 군사협상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정 여부를 두고 여전히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NLL 일대에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을 만들기로 한 남북 정상 간 4ㆍ27 판문점선언 도출에도 불구하고 북한 실무선에서는 여전히 서해 경계선인 경비계선을 주장하고 있어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얘기다. 결국 북한의 NLL 인정 여부 논란은 향후 구성될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에서 매듭지어야 할 과제가 됐다.
국방부 당국자는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 간 군사 협상장에서 북한이 경비계선을 주장했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남북 간) 수차례 접촉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입장을 주고 받지 않았겠느냐”고 답했다. 판문점선언 이후에도 북한이 경비계선을 주장했을 것이란 관측을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북한 태도는 서해 NLL 해역 북한 해군 함정들의 움직임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군에 따르면 북한 해군 함정은 지난 14일 국제상선 공용통신망을 통해 서해 상 남측 선박에 “경비계선을 침범했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12일에는 합동참모본부가 국정감사에서 7월부터 북한이 경비계선을 공세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비공개 보고하기도 했다.
일단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 간에는 NLL을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12일 “판문점선언부터 북한이 일관되게 NLL을 인정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 동향을 비춰보면 향후에 NLL을 서해 상 유일한 경계선이라고 북측이 명시적으로 인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측 역시 서해에서 수많은 교전을 해온 만큼 남측이 주장하는 NLL이 서해 상 경계선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열릴 남북군사공동위에서 NLL을 기준으로 한 서해 평화수역을 설정해 NLL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방침이다. 북이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NLL을 기준선으로 수역 설정이 이뤄질 경우 NLL을 실질적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평화수역이든 공동어로수역이든 NLL을 기준으로 설정되어야 한다”며 “남북군사공동위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남북은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해 군사공동위 구성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남ㆍ북ㆍ유엔군사령부는 이날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를 위한 3자 협의체 2차 회의를 열었다. 3자는 이번 회의에서 지난 1일부터 진행된 JSA 내 지뢰제거작업이 완료된 것으로 평가하고, JSA 내 화기철수 세부 일정을 논의했다.
한편 정부는 23일 남북 정상 간 9ㆍ19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등 두 가지 남북 간 합의를 국무회의에서 심의ㆍ의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선언이 이미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고 있는 만큼 판문점선언의 이행 성격 문서로 볼 수 있는 평양공동선언의 경우 별도의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 없다는 법제처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분야 합의서의 경우도 국회가 비준 동의권을 갖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 사항이 필요한 경우’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정부 판단으로 보인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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