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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ㆍ암 절망 속에서 봉사하며 되레 힘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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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ㆍ암 절망 속에서 봉사하며 되레 힘 얻었죠”

입력
2018.10.23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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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십자사 등촌3봉사단 김필만씨,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포장 수상 

김필만씨가 적십자 강서양천빵나눔터에서 취약계층에 전달할 빵을 만들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김필만씨가 적십자 강서양천빵나눔터에서 취약계층에 전달할 빵을 만들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크니깐요.”

대한적십자사 등촌3봉사회 소속 김필만(56)씨는 아침부터 봉사활동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22일은 김씨가 봉사회 회원들과 함께 서울 강서구 화곡동 독거노인 40세대에게 배달될 밑반찬을 만드는 날. 오전 9시부터 낮까지 김치를 담근 김씨 얼굴에는 힘든 기색 하나 없어 보였다. 김씨가 적십자사에 1997년 가입해 지금껏 활동한 기간은 무려 1만7,000시간.

장기간 왕성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김씨는 10년 간 암과 싸워오고 있는 투병자이기도 하다. 2008년 3월 뇌종양과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게 시작이었다. 다행히 뇌종양은 양성이었지만, 유방암은 방사선 치료에 수술까지 받았다. 조심스레 완치를 점치고 있을 때쯤 불행은 한 번 더 김씨를 찾아왔다. 같은 해 9월 자궁에 혹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결국 김씨는 자궁과 난소까지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게 됐다. 그렇게 일 년 넘게 병원을 오가며 항암 치료에 전념했다. 당시 김씨는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큰 병을 앓아야 하는 것인가”라며 며칠을 눈물로 보냈다.

그렇지만 절망의 나날을 구원해준 것은 봉사활동이었다. 김씨는 “아프다고 혼자 집에 있으니 나쁜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아직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고통과 아픔이 잊혀졌다”고 말했다. 가족도 김씨 뜻을 알고 응원해줬다. 항암치료를 받던 2010년 2월부터 다시 독거노인 봉사와 무료 밑반찬 배달에 지속적으로 나갔던 이유였다. 그 해 9월에는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집중호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서울 화곡동으로 달려갔다.

그렇지만 불행이 불행을 몰고 왔다. 2011년 1월 폐 흉막 종격동 림프에 암이 전이된 것이다. 다시 힘겨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의 연속이었다. 김씨는 “치료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았고, 이대로 살 날까지만 살다 가고 싶었다”며 “가족과 친구의 응원과 지지로 봉사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봉사 경력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바자회를 열어 번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쌀이나 라면을 준 것이 첫 계기였다. 이후 적십자 봉사회에 가입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그 해 8월 괌 KAL기 추락참사 유가족 지원을 시작으로, 사할린 동포 귀국과 북한이탈주민 지원에도 두 손 걷고 나섰다. 지금은 매주 세 번씩 나가는 봉사활동과 동시에 독거노인 및 조손가정 등 위기가구 6세대와 결연해 지원하고 있다.

김씨는 가능하다면 평생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보건복지부로부터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포장을 수상했다. 그는 “무엇을 바라고 봉사한 적이 없는데, 뜻하지 않게 주변 사람들의 추천으로 큰 상을 받게 됐다”며 “용기 내서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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