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인정을 받은) 우리의 친구가 상처를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편안한 삶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다만 여전히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많은 사람들, 그리고 이번 일련의 과정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지난 19일 이란 국적의 중학생 A군이 법무부 서울출입국ㆍ외국인청으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뒤 같은 학교 친구들이 올린 입장문이 시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A군은 7살 때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뒤 초등학교 2학년때 기독교로 개종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반역죄라 난민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중학교 3년 내내 소송에 매달렸다. 지난 7월 19일 친구들과 선생님의 지지를 받으며 난민지위 재신청을 했던 A군은 고대하던 결과를 얻게 됐다.
B중학교 학생들은 20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난민인정 결정을 내린 법무부와 난민 인정 신청 과정에서 도움을 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친구의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돼야 한다”며 사건의 본질에 집중해달라는 사려 깊은 당부를 했다. A군 개인과 학교에 이목이 쏠리는 것을 경계하되, 이번 일이 “이제 시작인 난민인권운동의 작은 이정표이자 각박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위대한 첫 발자국”으로써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한 것이다.
B중학교 학생들은 A군의 난민 인정 과정을 십시일반으로 도왔다. 친구들은 A군이 난민 신청을 한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 친구가 공정한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받게 해 주십시오”라는 글을 올려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A군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던 이번 재신청 때도 함께 서울출입국사무소를 찾았고, 이달 3일부터는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하기도 했다.
A군의 난민 신청 당시 “교육청 차원에서 도울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던 조 교육감(본보 7월 19일자 13면)은 “어려움에 부닥친 외국 친구에게 어른들도 실천하기 어려운 인류애를 행동으로 보여준 학생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점차 늘어가는 외국 국적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B중학교 학생회 입장문 전문]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이란 친구의 난민 인정을 환영하며
상상해봤으면 합니다. 당신이 태아이고 어머니의 국적을 모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머니는 한국인 일수도 있고 미국인일 수도 있지만 시리아인 이거나 예멘인, 이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난민에 대해 반대하며 추방하자고 말 할까요?
다행히 운 좋게도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내전도 없고, 정치적·종교적 자유도 억압되지 않는 나라인 대한민국에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난민은 내 문제가 아니라 너희 문제이니 우리 집을 더럽히지 말라’면서 문을 닫아야 하는 걸까요?
이제 우리는 우리의 친구가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편안한 삶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이란 친구 뿐 아니라 그를 돕는 우리 학생들 모두 같은 이유로 잊혀 지기를 원합니다. 다만, 여전히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이번 일련의 과정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이제 시작인 난민인권운동의 작은 이정표인 탓에, 팍팍하고 각박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위대한 첫 발자국인 탓에, 여전히 세상의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의지할 희망의 한 사례가 되는 탓에.
우리 친구가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조희연 교육감님. 가장 먼저 우리를 찾아와주셨고 우리와 함께 동행 하며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7만 교사와 수십만 학생의 수장으로서 우리의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주셨습니다.
염수정 추기경님. 수많은 사람을 만나 우리의 사정을 전해주셨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참 성직자가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분들이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전향적인 난민 인정 결정을 내린 서울출입국청심사관님께도 경의를 표합니다. 이번 결정이 출입국청이 난민 감별사가 아니라 난민 인권의 파수꾼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친구가 의지하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2018.10.19.
B중학교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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