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젠트리피케이션 조례…신청은 ‘0’
대구 중구청이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들이 떠나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 예방 조례를 대구경북 처음으로 제정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신청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임차인과 임대인의 자발적인 참여가 우선되는 제도적 한계로 인해 행정당국의 적극적 의지 없이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중구의회는 지난 3월21일 248회 임시회 2차 본회의를 열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내용을 담은 ‘지역상권 상생협력에 관한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조례가 상정된 지 2년 만이다.
조례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상생협력 체결 권장 ▦5년 이상 장기 임대차가 가능한 상생협력상가 조성 및 지원 ▦상생협력상가협의체 및 상가상생협력위원회 설치구성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자발적으로 상생협력상가협의체를 구성해 요청하면, 구청은 상가상생협력위원회 심의를 거쳐 환경개선 등 지역 활성화 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
중구청에 따르면 조례는 대구 대표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꼽히는 김광석길 등을 위해 2016년 4월 중구청이 중구의회에 첫 상정했으나 사유재산 침해 등을 이유로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됐다. 중구청은 지난해 5월 계명대 산학협력단에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방안 학술연구용역’을 의뢰,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조례를 수정해 올 3월8일 재발의하게 된 것이다.
이 조례는 어렵게 통과했지만 신청 건수는 7개월 째 ‘0건’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자발적으로’ 상생협력상가협의체를 구성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5년 째 방천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40대 남성은 “조례가 생겼다고는 들었지만 세입자 입장에서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동결하자고 어떻게 이야기를 먼저 꺼낼 수 있겠나”며 “주변에 장사하다 나가신 분들도 많고, 언제 나도 나가야할 지 모르기 때문에 세입자 입장에서 조례가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천동 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임대료가 2, 3배 정도 뛰었고 여전히 관광객도 많이 오고 장사도 잘 되는데 몇 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게 하면 어느 건물주가 좋아하겠나”며 “공동체 발전을 위한 사명의식이 없는 한 조례의 실효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서는 구청의 적극적 개입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서울 성동구청의 경우 2015년 9월 성수1가 제2동 서울숲길, 방송대길, 상원대 일대를 대상으로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서울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성동구청은 같은해 11월19일 전수조사와 협약 교육 등을 진행해 12월말에는 건물주 58명이 동참했고 3년이 지난 지난 9월말에는 해당구역 내 건물주 255명 중 65%인 165명이 상생협약에 동참했다. 성동구는 지난해 6월 구역을 성수1가1동, 성수2가1동 일대로 확대해 건물주 176명 중 31%인 54명을 동참시키는 등 효과를 보고 있다.
성동구 지속발전과 관계자는 “상생협약을 위해 전담팀 12명을 구성해 상생주민설명회 개최, 건물주 면담 등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확산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경북대 박상우(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계속된 임대료 상승은 임대인 퇴출을 일으켜 임차인에게도 마냥 좋은 일이 아닌 만큼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양측의 긴밀한 대화와 관계가 필요하다”며 “조례란 구속력이 없어 강제할 수 없고, 사유재산권을 조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임대인 임차인 모두와 지역발전을 위해 구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상> 관광객 외면하는 김광석길 주차장
<하> 젠트리피케이션 조례…신청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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