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일 NHN벅스 대표
지난달 11일 구글이 인공지능(AI) 스피커 ‘구글홈’ 한국 출시를 앞두고 기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기능을 소개했던 날, 구글은 AI 스피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음악 서비스의 한국 파트너를 소개했다. 1위 멜론도, 2위 지니뮤직도 아닌 3위 벅스였다. 당시 미키 김 구글 아태지역 하드웨어 사업 총괄은 “우리가 벅스를 선택한 게 아니라 벅스가 우리를 선택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었지만 주요 업체 중 벅스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구글의 과하게 겸손한 발언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재 국내 음악 서비스 생태계와 각 사의 생존전략을 함축한 한마디이다. 멜론은 카카오, 지니뮤직은 KT, 네이버뮤직은 네이버가 주인이다. 모두 주인들이 직접 만든 AI 스피커가 있다. AI 스피커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관계여서 음악 서비스가 경쟁사 AI스피커에 선뜻 발을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양주일 NHN벅스 대표는 “우리는 몸집이 작은 사업자여서 협업이 전략 중 하나”라며 “열린 파트너십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벅스의 방향성 중 하나는 ‘좋은 음질의 음악을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확장한다’이다. 구글의 스마트워치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웨어, 애플의 자동차용 OS 애플 카플레이, 삼성 냉장고 ‘패밀리 허브’ 등에 국내 음악 서비스 중 최초로 탑재됐다.
◇왕년의 절대강자, 소송전에 휘말리다
하지만 강력한 모기업이 뒤에 없다는 건 과감한 투자나 성장 동력 확보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외부 선입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벅스의 시장 점유율은 10% 아래이며, 멜론과 지니뮤직이 사실상 9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SK텔레콤도 음악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벅스의 미래가 불안할 법도 한데, 양 대표는 “고래들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질 테고, 그중 벅스가 공략할 수 있는 땅이 분명히 보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형 기업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벅스가 탄생한 건 2000년이다. 국내 최초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다운로드 중심의 소리바다보다 2, 3개월 먼저 나왔고, 세계 1위 스포티파이보다는 8년이나 빨랐다. 1년 만에 이용자 500만명을 모으며 ‘대박’이 났지만 전성기는 짧았다. 양 대표는 “당시에는 디지털 저작권이란 개념도 규정도 없었고, 뒤늦게 정립되면서 벅스는 어마어마한 소송전에 휘말리게 됐다”며 “그 사이 멜론과 지니뮤직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동통신사 중심으로 음악 시장이 빠르게 재편됐고 음악 서비스가 모바일 기반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놓쳤다. 그렇게 표류하던 벅스를 2015년 NHN엔터테인먼트가 인수하면서 지금의 NHN벅스가 됐다.
◇정통 음악 서비스의 살길을 찾다
양 대표는 “2015년 이전을 벅스의 암흑기로도 볼 수 있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음악으로 시작해 살아남은 유일한 서비스”라며 “출발도 음악 본업이었고 지금도 ‘음악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며 외길을 걸어온 곳이 벅스다”고 말했다.
정통 음악 서비스라는 자부심은 ‘누구보다 좋은 음질의 음원을 제공하겠다’는 뚝심이 됐다. 벅스에는 고음질 오디오 파일 형식인 플락(FLACㆍFree Lossless Audio Codec) 음원이 1,000만곡이 넘는다. 국내 서비스 중 가장 큰 규모다. 최대한 많은 FLAC 음원을 확보하기 위해 벅스의 유통 담당 직원들은 전국을 돌아다닌다. FLAC 음원을 구하려면 그 음악을 녹음해 원음을 가지고 있는 녹음업체를 찾아내야 하는데, 기획사나 제작사 등은 녹음업체가 어디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물어물어 녹음실을 알아내 겨우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양 대표의 설명이다.
양 대표는 “우리는 항상 CD 음질과 싸운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음질 차이를 체감하기 힘들 수 있다”며 “고음질을 즐기기 위해 벅스에 가입하는 경우는 드물 수 있지만, 일단 사용하는 사람들이 벅스를 떠나지 않는 요인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고음질만 고집하는 소비층이 얕긴 하지만, 그들에게 인정받으면 전문가 그룹들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며 “음악 사업자에게 음질은 기본기”라고 강조했다.
◇기술ㆍ체험으로 고음질의 대중화 이끈다
믿고 들을 수 있는 음원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 6월에는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활용한 국내 유일의 음원 검증 기술 ‘소나’를 개발, 도입했다. 고음질 시장이 이제 막 성장하는 과정이어서 혹시 가짜 고음질 음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최신 기술로 선별하는 것이다. 음원 손실이나 압축을 분석하는 알고리즘으로 의심되는 음원을 걸러낸다.
벅스가 꾸준히 청음회와 오디오쇼를 여는 것도 고음질이 주는 경험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벅스가 이달 27,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하는 ‘벅스 슈퍼사운드 코리아’에는 소니, 오드오디오, 사운드캣 등 국내외 유명 업체들이 참여한다. 이들의 헤드폰, 이어폰, 오디오, 스피커 등으로 벅스의 고음질 음원을 체험할 수 있다. 음향 관련 세미나도 진행된다.
양 대표는 “벅스는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려 하고 있고 고음질이 그 중 중요한 부분”이라며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최대한 다양한, 높은 품질의 곡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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