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 경부암 백신을 맞은 남성인데요. 좋아하는 여자한테 점수 딸 수 있을까요.”
지난 9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이다. 해당 게시물에 “자궁도 없는 남자가 왜맞았느냐”는 질문부터 “여자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 돋보인다”는 등 우호적인 내용까지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남성도 백신주사 맞아야 합니다”
최근 해당 게시물처럼 자궁 경부암 백신주사를 맞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자궁 경부암 바이러스로 알려진 사람 유두종 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 HPV)는 주로 성 관계를 통해 전파된다. 남녀 가리지 않고 구강이나 성기의 점막과 피부 겉면(상피)을 통해 침투하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여성의 경우 자궁 경부암이나 편도암이 발병할 수 있고 남성도 편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남성보다 여성의 발병률이 높고 자궁 경부암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자궁 경부암 바이러스로 불린다.
특히 자궁 경부암은 전세계에 걸쳐 여성들이 유방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걸리는 암이다. 문제는 자궁 경부암이 바이러스 감염 이후 암으로 진행되기까지 보통 10년 이상 걸려 발병 사실을 알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자들도 백신을 맞으면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를 하나라도 줄여 여성들의 자궁 경부암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자궁 경부암 백신을 맞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하나로 의료재단 종로본원의 한봉희 원장은 “남성이 자궁 경부암 백신을 맞으면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확률이 낮아져 여성들의 자궁 경부암 발생률을 줄일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남성들 사이에서도 백신을 맞는 분위기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자궁 경부암 백신은 성기에 생기는 사마귀 질환인 곤지름도 예방해 준다. 한 원장은 “곤지름 등 HPV가 일으키는 질병을 예방하고자 자궁 경부암 백신을 맞는 남성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남성 만 9세부터 접종 가능 “어릴수록 효과”
정부는 2016년부터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자궁 경부암 백신을 포함시켜 만 12세 이상 여성에게 무료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또 만 20세 이상 여성은 2년마다 무료로 자궁 경부암 검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은 무료 예방접종 대상이 아니다.
남성은 만 9세부터 자궁 경부암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다. 의사들은 성 관계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를 감안해 되도록 남성들도 어린 나이에 자궁 경부암 백신 주사를 맞아야 예방효과가 크다고 본다.
만 25세 남성인 기자도 자궁 경부암 백신 접종에 도전해 봤다. 지난 16일 서울 종각역에 위치한 하나로 의료재단을 찾아갔다. 우선 ‘가다실9가’, ‘가다실4가’, ‘서바릭스’ 등 3가지 백신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가다실9가는 7개 유형의 HPV를 예방해 주고, 가다실4가는 자궁 경부암을 유발하는 HPV 유형과 곤지름을 유발하는 HPV 유형 2가지를 예방해준다. 서바릭스는 자궁 경부암만 대응하며 곤지름에 대한 예방효과가 없다. 따라서 서바릭스보다 가다실을 접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격도 다르다. 총 3회를 맞아야 하는데 1회 접종에 가다실9가는 19만원, 가다실4가는 10만5,000원, 서바릭스 9만원이다. 중간 가격인 가다실4가를 골랐다.
평일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대기자가 많지 않아 바로 접종할 수 있었다. 접종 방법은 가장 대표적 방법인 주사 접종이었다. 아무래도 백신 이름 때문에 어색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간호사가 커다란 주사기를 들고 들어오며 “꽤 아플 테니 20초 정도만 참으라”고 말해 긴장했다. 주사 한 방 맞는데 20초나 걸린다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꽤 기다란 바늘을 왼쪽 어깨에 찔러 넣고 백신을 투입했다. 맞는 순간 따끔하고 약이 투여될 동안 어깨가 시큰거렸지만 견딜만 했다.
병원에서는 접종 후 10여분 간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접종자 중에 드물게 과민성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 반응을 보여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과민성 쇼크인 아나필락시스 반응은 체내에 외부 이물질이 들어올 때 면역체계가 과민반응을 보여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증상이다. 다행히 별다른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아 15분 후 병원을 나섰다.
◇접종비 수십만원… 남성도 무료접종 지원해야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자궁 경부암 백신은 총 3회 접종해야 한다. 1회 접종 후 2개월이 지나서 두 번째 접종을 하고 두 번째 주사를 맞은 뒤 4개월 뒤에 세 번째 주사를 맞는 등 6개월에 걸쳐 접종을 한다. 따라서 가다실4가 백신 선택시 3회 예방 접종에 31만5,000원이 든다. 독감 예방 접종 3만원, B형 간염 예방 접종 4만5,000원, A형 간염 예방 접종이 1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적은 비용은 아니다.
그래서 비용 때문에 백신 접종을 꺼리는 남성들도 있다. 취업을 준비중인 안종태(26)씨는 “미래 배우자를 위해 접종 받고 싶지만 비용이 수십 만원이어서 선뜻 예방 접종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웹툰 작가 김풍(40)씨도 지난 2월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궁 경부암 발병 원인이 남자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예방 접종을 하려고 병원에 찾아갔다가 비용이 비싸서 당황했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서는 자궁 경부암의 예방 효과를 높이려면 남성들의 예방 접종 확대가 필요한 만큼 접종 비용을 낮추거나 무료 대상에 남성을 포함시키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HPV가 편도암의 일종인 구인두암을 유발하기 때문에 국가 예방접종사업을 확대해 남성 청소년들도 자궁 경부암 백신 접종 대상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이탈리아 등 19개국이 남성 청소년에게도 자궁 경부암 백신을 무료 접종하고 있다.
권용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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