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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벌목 노동 코끼리의 비명… 구해야겠다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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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벌목 노동 코끼리의 비명… 구해야겠다 결심했죠”

입력
2018.10.20 04:40
수정
2018.10.20 09:5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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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와 아픔을 겪던 코끼리들이 구조된 후 코끼리자연공원에서 새 삶을 찾았다. 코끼리자연공원 제공
학대와 아픔을 겪던 코끼리들이 구조된 후 코끼리자연공원에서 새 삶을 찾았다. 코끼리자연공원 제공

지난 13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세미나실. 주말 저녁이었지만 초등학생부터 40대 이상 직장인까지 30여명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끼리 보호 활동가이자 타임지가 ‘아시아의 영웅’이라 일컬은 생두언 렉 차일럿(57)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렉씨는 태국에서 ‘코끼리자연공원’(Elephant Nature Park)을 운영하면서 80여마리의 코끼리를 비롯해 1,000여마리가 넘는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과 농장동물을 돌보고 있다. 그는 지난 12, 13일 열린 ‘제1회 카라 동물영화제’의 특별 게스트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 동물복지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영화제에는 렉씨의 코끼리 구조기를 담은 영화 ‘코끼리와 바나나’가 상영됐다. 평생 사람들을 등에 태우고 트래킹을 하는 고된 삶을 살던 나이든 코끼리 ‘노이나’를 구조하는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70세가 되어서야 사랑과 자유를 얻고 달콤한 바나나를 먹을 수 있게 된 노이나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사용되는 뾰족한 갈고리인 '불훅'으로 학대받고 있는 어린 코끼리. peta.org 캡처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사용되는 뾰족한 갈고리인 '불훅'으로 학대받고 있는 어린 코끼리. peta.org 캡처

참가자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점 중 하나는 렉씨가 코끼리를 처음 구조하게 된 계기였다. 40여년 전 그는 열 여섯 살 때 우연히 자원봉사를 갔다가 산 속에서 코끼리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듣게 됐다. 가까이 가보니 앙상하게 마른 코끼리가 산으로 목재를 끌고 올라가는 도중 내는 괴로움의 소리였다. 코끼리 주인은 쇠꼬챙이로 코끼리의 머리를 찔러댔고, 코끼리는 피를 흘리면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는 “코끼리의 눈은 공포, 혼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며 “그때 코끼리를 구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13일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세미나실에서 생두언 렉 차일럿(두번째줄 오른쪽 세번쨰)씨와 임순례(두번째 줄 오른쪽 네번째) 카라 대표 겸 영화감독, 시민들이 코끼리 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카라 제공
13일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세미나실에서 생두언 렉 차일럿(두번째줄 오른쪽 세번쨰)씨와 임순례(두번째 줄 오른쪽 네번째) 카라 대표 겸 영화감독, 시민들이 코끼리 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카라 제공

코끼리 구조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치료를 위한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는 볼링공을 닦아 모은 돈으로 동물교육과 치료에 관한 책을 산 다음 약을 구입해 산에서 만났던 코끼리에게 돌아갔다. 코끼리의 살은 썩어가고 있었지만 어떤 처치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도와주니 이웃 주민들이 비슷한 처지의 다른 코끼리들을 소개해줬고, 눈이 멀고 상처투성이인 코끼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코끼리들은 언제 쉴 수 있냐”고 묻자 그들은 “죽으면 쉴 수 있다”고 했다. 렉씨는 이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코끼리구조활동을 꾸준히 벌여오던 그는 2003년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태국 북부도시 치앙마이 부근에 코끼리 자연공원을 설립했다. 과도한 벌목 노동, 서커스 등에 혹사당하고 건강을 잃은 아시아코끼리 30여 마리를 인수한 게 그 시작이었다. 지금도 누구라도 코끼리자연공원을 방문해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방문객을 통한 수익금은 자연공원 운영과 다른 코끼리 구조활동에 쓰이고 있다.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자연공원 설립자인 생두언 렉 차일럿씨가 코끼리들과 함께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카라 제공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자연공원 설립자인 생두언 렉 차일럿씨가 코끼리들과 함께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카라 제공

40년 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코끼리들에 대한 학대는 계속되고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는 아직도 코끼리 관광산업이 성업 중이다. 이를 위해 코끼리의 야행성을 없애는 ‘파잔의식’도 계속 행해지고 있다. 어린 코끼리를 3~7일간 작은 나무 우리에 가두고 쇠꼬챙이로 코끼리의 온몸을 찌르는데, 학대를 견디고 나온 코끼리들은 엄마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공포에 질린 어린 코끼리에게 이때부터 춤추기, 자전거타기, 줄타기 등을 가혹하게 훈련시키는 것이다. “단지 보이는 않는 곳에서 일어날 뿐입니다. 여전히 아기 코끼리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고통스러운 학대를 받고 있지요. 이 문제에 대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파잔의식 동영상을 한번이라도 본다면 절대 코끼리쇼를 보지 못할 겁니다.”

때문에 렉씨가 동물보호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정보 공유다. 코끼리쇼 관람 등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자연공원에 사는 코끼리 가족. 코끼리자연공원 제공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자연공원에 사는 코끼리 가족. 코끼리자연공원 제공

한 초등학생은 우리가 코끼리부터 배울 만한 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코끼리자연공원에 있는 눈이 보이지 않는 코끼리 18마리의 사연을 소개했다. 코끼리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코끼리를 아무 조건 없이 돕고,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도 할머니 코끼리는 엄마 잃은 아기 코끼리가 잠들 때까지 지켜주고 돌본다고 했다. 그는 “동물은 사랑하지만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다”며 “코끼리처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도 포용할 수 있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도와주고 싶은 동물에 대해 묻자 렉씨는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와 서울대공원에 사는 할머니 코끼리 ‘사쿠라’를 꼽았다. 일본의 한 동물원에서 쇼에 이용되다 동물원이 폐업하면서 한국으로 오게 된 사쿠라는 같이 살던 코끼리들이 세상을 떠나고 짝을 찾지 못한 채 외롭게 지내왔다. 그는 “좁은 콘크리트 공간에 살던 것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살아갈 공간은 충분하지 않다”며 “사쿠라에게 지금이라도 자유와 평화로운 공간을 주고 싶다”고 했다.

관광산업에 동원되다 구조된 후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자연공원에 살고 있는 코끼리들. 영화 '코끼리와 바나나'캡처
관광산업에 동원되다 구조된 후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자연공원에 살고 있는 코끼리들. 영화 '코끼리와 바나나'캡처

벌목과 관광산업에 동원되면서 여전히 학대의 대상인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렉씨는 코끼리를 이용해 관광사업을 하는 기업이나 농장주를 대상으로 생츄어리(야생동물 공원)로 전환토록 설득하고 돕고 있다. “100마리의 코끼리로 관광사업을 하는 농장주를 설득하는데 3년 반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생츄어리가 된 이후 수익은 10배가 늘었지요. 이제 사람들은 인도적인 걸 더 좋아합니다. 다른 기업들도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코끼리들을 위한 희망이 있습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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