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리나라 정부에 재정을 과감하게 풀어 내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나랏돈으로 소비와 투자를 자극해 수입을 늘리는 식으로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줄이라는 이야기다.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진 않았지만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미국 정부의 압박은 더 강화되는 모양새다.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날 발표한 ‘주요 교역대상국의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이 같은 내용을 한국 정부에 주문했다. 미 재무부는 6개월에 한 번씩 교역대상국의 외환시장 정책을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이를 의회에 제출한다.
먼저 미 재무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평가를 인용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비춰볼 때 경상수지 흑자가 과다하다고 주장했다. 경상수지는 상품과 서비스 등을 사고 팔며 벌어들인 외화(수출)와 지급한 외화(수입)의 차이를 뜻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은 2015년 8% 수준에서 올해 1분기 4.2%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는 상당 부분 서비스적자가 확대된 덕이라는 게 미 재무부의 판단이다. GDP 대비 상품수지 흑자 비중은 7% 수준으로 여전히 높다.
보고서는 특히 “지난해 하반기 원화가치가 달러 대비 7% 상승(환율 하락)했다 올해 이 같은 상승폭의 상당 부분을 반납했다”며 “(한국 외환 당국은) 원화 가치가 오르던 작년 11월과 올해 1월 (달러화) 매수규모를 집중적으로 늘렸다”고 지적했다. 미 재무부는 최근 IMF 분석을 인용, 원화가 2~7% 정도 저평가됐다고 봤다.
미 재무부는 이어 △수출과 내수간 불균형 해소 △외환시장 개입 자제 등을 권고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내수를 부양할 충분한 정책적 여력이 있다”며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40% 미만”이라고 강조했다. 재정을 과감하게 풀어 ‘내수(소비+투자) 증가→수입증가→경상수지 흑자 감축’을 유도하라는 말이다. 한국 정부가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9.7% 늘어난 470조5,000억원 규모로 편성한 데 대해서는 “올바른 방향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또 “한국 정부는 무질서한 시장 등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진 말라는 뜻이다. 작년 7월~올해 6월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선물시장 포함)에 개입해 달러화를 순매수한 규모는 41억 달러(GDP의 0.3%)로 추산됐다. 미 재무부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외환시장 개입내역을 신속히 공개할 것”을 권고했고, 이에 정부는 이를 단계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 외환시장 개입내역은 내년 3월 처음 공개된다. 보고서는 “향후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를 포함한 환율 관련 정책 시행에 관해 면밀히 모니터링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 재무부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시장 개혁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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