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접근법 의견차 보인 한미
남북ㆍ북미관계 근본차이 감안하면 당연
동맹 공조 이상없게 의견 조율에 힘써야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과 미국은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긴밀(緊密)’은 ‘서로의 관계가 매우 가까워 빈틈이 없는’ 것이다. 무언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토록 긴밀한 한미관계에 요즘 마찰, 균열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여러 정황이 그런 의심을 키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 한반도 정책의 핵심은 ‘운전자론’이다. 남북이 주도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고,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진가를 발휘했다. 1,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1차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3차 남북정상회담은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끌어냈다. 정부는 ‘운전자론’의 전략적 효용성에 대한 확신이 섰을 것이다.
그러나 북미 간 세부 협상이 진행되고, 남북 관계개선 및 교류확대 회담이 개최되면서 상황이 묘해졌다. 남북 관계개선에서는 큰 진전들이 이뤄진 반면 북미 비핵화 협상은 기대 만큼의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성과 수준과 속도의 불일치가 한미 간에 이상기류를 형성한 것이다. 정상들이 주도한 큰 차원의 협상 국면과 실무 협상 국면의 상이성, 대립-화해의 부침을 거듭한 남북관계 역사와 대결 일변도였던 북미관계 역사의 본질적 차이 등을 감안하면 남북∙북미 협상 사이의 괴리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결과의 차이가 상황 인식과 돌파 전략에서의 이견으로 이어지는게 문제다.
외관(外觀)만 보면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 입장은 달라진게 없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비핵화는 분리할 수 없고, 완전한 비핵화 없이 제재 완화도 없다는 점 등에선 차이가 없다. 문 대통령이 공식화한 제재 완화도 ‘북한의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전제된 것이다. 17일 해리스 주한미대사 발언 등 미 국무부 관계자들의 언급도 ‘비핵화 전 제재 유지’라는 일관된 입장 위에 서있다. 하지만 같은 맥락의 발언도 시기와 상황이 바뀌면 달리 해석되기 마련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공조 균열을 우려한 언론을 향해 국무부 답변의 변함없음을 거론하며 “걱정말라”고 공박했다. 하지만 최근 한미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3차 남북정상회담 직전 남북 군사분야 합의내용을 보고받고 우리 측에 불만을 터뜨렸다. 사전에 상세내용을 전달받지 못한 것이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대북 핵리스트 신고 요구를 미뤄야 한다고 했지만 미국은 외면했다.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대북 독자 제재인 5∙24 조치 해제를 검토 중이라는 강 장관 언급은 “우리 ‘승인’ 없이는 못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이어지면서 한미 간 갈등요소가 됐다. 앞서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사는 8월말 경유 반출을 이유로 남북 경의선 철도 공동조사를 무산시켰다. 한미가 긴밀히 협의했다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협의 과정의 의견 대립은 정상적이다. 문제는 조율되지 않은 발언들이 외부로 자주 노출된다는 점이다. 갈등이 생각보다 크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북미 협상은 더딘데 남북관계만 성큼성큼 앞서가는 모습에 “한국이 미국에 저항한다”는 식의 극단적 평가가 나올 만큼 미국 조야의 의구심이 큰 상황에서 ‘비핵화보다 앞서가는 남북관계 발전’을 강조하고 ‘대북 제재 완화’를 언급하는 것은 그 전략적 판단이나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동맹이 의도와 목적을 오독(誤讀)할 소지가 다분하다.
북한 비핵화를 향해 한 길을 걷는 한미동맹도 속보(速步)냐, 완보(緩步)냐 같은 세부 방법상 이견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충분한 사전 협의와 공감 후에 일관된 메시지를 표출하지 못한 채 의견 충돌만 거듭 노정한다면 의문과 의심은 커지고 한미동맹 관계에도 틈이 생길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장기화를 예고하는 상황이 우리 정부의 조급증을 자극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국과의 공조를 단단히 하는 방향으로 내부 전략을 다듬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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