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야 산다!
국정감사장에서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여야 의원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톡톡 튀는 의상을 입고 나서거나 각종 소품을 동원해 눈길을 끈다. 심지어 벵갈 고양이를 등장시켰다가 ‘동물 학대’라는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튀는 것이 곧 사는 것’인 의원들의 국감 소품 백태를 모았다.
1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이 한복을 입고 나타났다. 서울 시내 주요 고궁이 ‘변형 한복’ 입장객에게 무료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고궁 근처 대여점에서 빌린 한복을 직접 입은 것이다. 18일에는 같은 당 이동섭 의원이 ‘태권도 국기 지정법’ 홍보를 위해 태권도복을 입고 질의에 나섰다. 같은 상임위에 소속된 두 의원의 의상은 질의 내용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
국방위원회 국감에서는 K-11 소총도 등장했다. 15일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해당 소총의 결함 등에 대해 질의하는 동안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K-11 소총을 든 의원실 관계자에게 쏟아졌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10일 정무위 국감에서 벵갈 고양이를 우리에 넣어 회의장에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동물원을 탈출했다 사살된 퓨마 ‘뽀롱이’에 대한 당국의 과잉 대응을 지적하기 위해 준비한 소품이지만 ‘동물 학대’라는 비난에 직면하고 말았다.
튀는 소품뿐 아니라 튀는 행동도 있다. 국방위원회의 전방 부대 방문이나 자영업자 및 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경제 현장 시찰을 통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원들. 그러나 사진 촬영을 위한 잠깐의 이벤트를 위해 피감 기관이나 시민들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살아있는 동물, 대형 병풍 자료, K-11 소총까지
존재감 살리는 데는 소품이 최고
감사 본질에서 벗어난 언론 플레이에 따가운 시선도
국정감사 본질에 주력하는 노력 필요
정치적 의도를 띤 과도한 소품 동원이 여야 간의 갈등으로 번지며 감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11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로 7m 길이의 대형 현수막을 감사장에 내걸었다. '文 정부 방송장악 잔혹사'라는 제목의 사례 모음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이루어진 공영방송사의 경영진 및 이사 교체 과정, 기자 해임 사태 등을 다룬 내용이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회의는 중단되고 말았다.
다양한 소품을 동원한 의원들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시선 집중 효과’에만 치중할 뿐 질의의 내실까지 이어지지 않는 점은 아쉽다.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은 철장 속 고양이가 아니라 행정부의 정책, 예산 집행에 대한 국회의원의 철저한 감독 능력 아닐까.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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