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럽의회(EP) 의원은 동유럽 여성이 서유럽 여권을 얻기 위해 뭐든지 하기 때문에 동유럽 여성만 고용한다며 내가 고용된 이유도 같을 거라고 했다. 또 내 태도가 다른 여성 직원처럼 애교 있지 못하고, 뻣뻣해서 손해를 본다고도 했다. 불행히도 나는 날마다 상관도 아닌 이 의원과 같이 일해야 했다.”
“공식 업무상 출장 도중 에어비엔비로 남성 동료와 같은 숙소에 묵게 됐다. 밤중에 동료가 침실로 들어왔다. 5분 동안 나를 희롱한 끝에 내가 호응해 주지 않는다며 비난하고는 방을 떠났다. 2017년 10월 3일, 관할기관에 불만을 제기했다. 아직도 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달 9일부터 유럽연합(EU) 입법부 격인 유럽의회 여성 보좌진 1,000여명이 공동 작성 중인 익명 블로그 ‘미투EP’에 적힌 고발이다. 상급자의 언어 폭력, 실제 성폭력 사건 처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의회 조직의 모습은 올해 초 한국 국회에서도 화제가 됐던 성적 괴롭힘 고발과 비슷하다. 현재 28개국을 관할하는 유럽의회 특성상 인종과 국적 차별까지 나타나고 있다.
블로그 운영진은 성폭력을 둘러싼 “침묵의 문화”를 깨고 유럽의회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개설 목적을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유럽의회는 ‘미투’의 영향으로 나타난 성폭력 주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독립된 전문 위원회’를 구성하고 불편부당한 사건 조사를 진행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피해자를 위한 법적 조력 및 가해자가 분명한 직원의 엄중 처벌 등도 포함됐다. 하지만 유럽의회에서 처음으로 공개 ‘미투’ 발언을 한 프랑스 출신 잔 퐁테 보좌관은 “이런 조치는 말뿐이었고, 실제 적용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유럽의회뿐 아니라 각국 의회에서도 비슷한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국제의회연맹(IPU)과 유럽평의회 의회협의체(PACE)는 유럽평의회 소속 45개국 여성 의원 81명ㆍ직원 42명을 공동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 조사에서 25%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특히 직원들은 남성 의원에게 성적 괴롭힘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IPU는 이미 2016년 보고서에서 “의회 내 성폭력은 전세계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서 15일에는 영국 하원이 로라 콕스 전 대법원 판사에 의뢰한 괴롭힘 실태 보고서가 공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원의 직원들은 ‘신처럼 군림하는’ 의원들로부터 성적ㆍ언어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 직원들이 더 심각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보고서는 “어떤 직장이든 괴롭힘은 있지만 특히 하원은 상명하복과 침묵의 문화 때문에 더 문제가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콕스 보고서는 특정 피해자나 가해자를 적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고서 내용을 보도한 영국 일간지 타임스는 존 버코 하원의장에 대한 사임 요구 여론이 비등하다고 전했다. 타임스에 따르면 버코 의장은 과거 개인비서로 고용한 남성 1명과 여성 1명을 정신적으로 괴롭혔다는 이유로 고발된 적이 있다. 여성 비서로 일했던 케이트 엠스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다.
애초에 이번 조사도 버코 의장에 대한 논란으로 진행한 것이다. 버코 의장은 여전히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새로운 독립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BBC방송은 버코 의장이 사임 요구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 절차가 마무리되는 내년 여름에나 사임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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