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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혹 떼려다 혹 붙인 ‘광주형 일자리’

입력
2018.10.1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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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한국노총 광주본부 간부들이 지난달 19일 광주시의회 3층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형 일자리 사업 적용 모델인 현대자동차 위탁조립공장 설립을 위한 광주시의 투자협상과 관련해 모든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안경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한국노총 광주본부 간부들이 지난달 19일 광주시의회 3층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형 일자리 사업 적용 모델인 현대자동차 위탁조립공장 설립을 위한 광주시의 투자협상과 관련해 모든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안경호 기자

광주시가 광주형 일자리 실험 모델인 현대자동차 위탁조립공장 투자유치사업에 불참을 선언한 노동계를 다시 사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설득에 나섰다가 몰매만 맞았다. 사업 무산 위기의 원인을 노동계 탓으로 돌려 불신을 자초한 시가 이번엔 노동계의 현대차 투자협상을 둘러싼 여러 문제 제기에 대해 자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알맹이 없는 답변을 내놓으며 되레 노동계의 화만 돋운 것이다.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격이다.

한국노총 광주본부는 17일 ‘현대차 투자유치 관련 광주시 공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시에 보냈다. 시가 전날 현대차 투자유치와 관련해 한국노총이 질의한 광주시 요구안 및 요구안 변경 여부, 현대차와 합의 내용, 노동계 교섭 권한 등 9개 항목에 대한 답을 공문으로 보내왔는데, 이에 대한 노동계의 입장을 담은 회신이었다.

이 답변서엔 현대차 투자유치 협상을 둘러싼 광주시의 불통행정을 신랄하게 꾸짖는 내용이 가득 담겼다. “광주시의 답변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운을 뗀 한국노총은 “시가 감출 내용이 그렇게 많다면 애초부터 노동계와 함께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고, 모든 내용을 공개한 것이라면 협상의 부실함은 물론이고 질의에 대한 이해조차 못하는 것으로,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맹비난했다. 한국노총은 이어 “현대차 투자유치와 관련해 광주시 요구안이 무엇인지 묻는 답변에 시는 '무엇이다'라는 말은 단 한 줄도 없이 '투자협상을 진행했고 협상 중'이라는 황당한 답변만 했다”며 “설마 요구안도 없이 협상을 했다면 이용섭 광주시장은 당장 협상을 중지하고 협상요구안부터 만들라”고 꼬집었다.

한국노총은 특히 “당초 경영엔 참여하지 않겠다던 현대차가 임금과 노동시간을 결정하고 있고, 광주시는 현대차가 제시한 근로조건을 수용하라고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다”며 “현대차처럼 투자자가 기업의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법의 근거와 사례가 있다면 밝혀달라”고 일갈했다. 한국노총은 또 “광주형 일자리의 기본 바탕이 사회적 대합의인데도 광주시가 사회적 대화기구인 더 나은 일자리위원회 조례를 폐지하고 위원회마저 해산시켜 지난 2년간 논의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며 “현대차 투자유치 과정에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데 이에 대한 방안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마지막으로 “광주시는 잘못된 비밀협상을 인정하고 사회적 대화 재개와 당사자인 노동계는 물론 전문가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라며 “이번 투자유치협상이 우리 미래세대를 위한 결정이 되도록 소통행정을 펼쳐달라”고 당부했다.

한국노총이 이날 답변서를 통해 그간 애써 눌러왔던 불만들을 폭발시키면서 광주시의 현대차 투자유치사업 전망은 더욱 암울해졌다. 한국노총 일각에선 “광주시가 우릴 가지고 노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또 다른 쪽에선 광주시의 내용 없는 답변서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출구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노동계가 끝내 현대차 투자유치 사업 참여를 거부할 경우에 대비해 노동계 대신 시민단체 대표를 참여시킬 방안까지 강구 중인 시로선 굳이 노동계를 설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터라 노동계를 빼고 갈 명분쌓기용으로 무성의한 ‘답변서 행정’을 계속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장연주 광주시의원은 “광주시가 이달 말까지라고 선포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 실현을 위한 골든타임은 노동계가 책임질 시간이 아니다”며 “시는 협상테이블에서 노동계를 배제한 점을 사과하고 노동계 참여를 보장해야 하며, 노동계를 압박하기에 앞서 노동계가 참여할 명분과 방안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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