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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생했어, 영혼을 달래주는 뜨끈한 된장찌개

입력
2018.10.1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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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엠 제공
키즈엠 제공

솔푸드(soul food)의 어원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전통 음식을 일컫는 말이었다. 주로 미국 남부의 대형농장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흑인들이 백인 농장주가 남기고 버린 음식들을 자연스레 가져다 먹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솔푸드’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이 촉발되면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흑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혹독한 노동과 차별, 억압 속에서 살아온 흑인들의 한 맺힌 눈물이 배어있는 음식들인 것이다. 향신료가 강한 거칠고 싼 음식이지만 그들에겐 머나먼 타향살이에 지치고 소외된 마음을 달래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라이드치킨’이 있다.

그림책 ‘된장찌개’는 식재료를 의인화하여 된장찌개를 끓이는 과정을 재밌게 그려냈다. 찬바람이 몹시 불던 날, 오들오들 떨며 숲길을 걷던 멸치 세 마리는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물에 곧장 뛰어든다. 마침 이웃 마을로 된장을 팔러 가던 감자들도 멸치가 헤엄치고 있는 온천물에 연달아 풍덩풍덩 뛰어들었다. 감자들이 머리에 이고 있던 된장이 온천물에 빠지며 풀어져 구수한 냄새가 더해졌다. 지나던 호박들도, 버섯과 대파들도, 마지막으로 두부들까지 이 이상한 온천물에 홀린 듯이 차례로 몸을 담근다. 따뜻한 온천에서 추위에 얼었던 몸과 마음이 풀려 모두들 행복해졌다. 유쾌한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상상컨대 “보글보글”하는 찌개 끓는 소리일거 같다. 구수한 냄새가 퍼지는 온천 위 하늘에는 어느새 하얀 눈이 내린다.

키즈엠 제공
키즈엠 제공

된장찌개는 흔하고 소박한 음식이지만 제대로 만들려고 보면 생각보다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멸치국물을 우리고, 여러 채소들을 다듬어 썰어 넣고, 된장을 풀고, 마지막에 두부를 넣어 끓인다. 된장찌개가 실은 이렇게 많은 재료를 다듬고 손질하고 신경을 써야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식임을 새삼 깨닫는다. 매일 된장찌개를 끊여주시던 엄마의 노고가 고마워진다.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밤늦게 돌아와 불 꺼진 집에 들어선다. 불을 켜니 문득 책장 위에 놓인 그림책 표지에 그려진 된장찌개가 눈에 들어온다. 비록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아니지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줄 것만 같다.

“어서 와. 오늘도 수고했네. 얼른 손 씻고 와서 밥 먹어.”


 된장찌개 

 천미진 지음∙강은옥 그림 

 키즈엠 발행∙36쪽∙1만원 

이 그림책의 미덕은 단연 표지 그림에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건 된장찌개는 꽤 효험 좋은 민간치료법이 분명하다. 위장병에도, 식욕부진에도, 향수병에도, 해장에도… 어디에도 빠질 수가 없는 한국 사람들의 보약이자 솔푸드가 되어주니 말이다.

찬바람이 불어와 감기가 달라붙으려고 할 때 뜨끈한 뚝배기에 담긴 구수한 된장찌개라는 처방이 절실하다. 뜨거운 김을 후후 불며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내고 나면 그 어떤 시련과 고난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뱃심이 생겨날 것만 같다.

편의점 도시락, 인스턴트식품, 배달음식으로 간단히 한 끼 때우고 말려 할 때 자신을 위해 소매를 걷고 된장찌개를 끊여보는 것은 어떨까? 그 무엇보다 큰 응원이 되어 줄 것이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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