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엘리엇, 쉰들러…
세계 유수 기업이나 헤지펀드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잇달아 제기하면서, 한국이 외국인 투자자의 ‘만만한 먹잇감’이 될 것이란 괴담이 현실화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ISD는 소송을 치르는 데만 수백억원이 들고, 패소하면 이보다 더 큰 세금 손실이 불가피하다. ISD에 대한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법무부는 16일 세계 2위 승강기 제조사인 스위스 쉰들러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3억달러(약 3,400억원) 규모의 ISD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쉰들러는 2003년 범현대가인 KCC와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이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현대그룹 지분 25%를 사들여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에 오른 회사다. 2013∼2015년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과정에서 당시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뤄졌는데도 금융감독 당국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손해를 봤다는 게 쉰들러의 주장이다.
ISD는 다른 나라에 투자했다가 해당 국가의 부당한 조치로 피해를 본 외국인투자자를 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 중재 절차다. 외국인투자자가 자국민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아 피해를 봤다면 국제중재를 거쳐 손해를 배상해주겠다는 취지다. 한국은 미국 등 주요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ISD 제도를 대부분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ISD가 정부의 행정ㆍ사법 주권을 위협할 독소 조항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까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ISD는 총 7번 제기됐다. 2012년 11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46억9,700만달러(5조1,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올해 6월에는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무산과 관련해 이란 기업이 제기한 ISD에서 처음으로 패소하기도 했다.
문제는 갈수록ISD 제기 건수가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7, 8월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과 엘리엇 등을 포함하면 올해에만 4건의 ISD가 접수됐다. 배상요구 금액만 1조4,000억원을 넘어섰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2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ISD의 최고 피청구 국가가 어디냐”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우리나라”라고 답했다.
과거 ISD는 미국계 헤지펀드들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거나 돈을 뽑아낼 목적으로 주로 활용됐지만, 최근에는 비금융기업의 ISD 사례도 잇따른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쉰들러 사례는 ISD가 유럽국가와 제조업체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FTA 체결 당시 ISD가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과거 정부가 신속한 체결을 목적으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도 “ISD를 도입하며 투자 개념을 굉장히 넓게 규정했고, 그 결과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소하기가 쉬워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권교체를 거치며 과거 정부의 인허가와다음 정부의 규제 정책이 크게 달라지기도 하는한국적 특성 또한 ISD 제소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배경으로 꼽힌다.
최 교수는 “유럽은 (국제 중재 대신) 투자법원 체제로 가고 있고 호주에서도 투자협정을 재검토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변화된 상황에 맞는 제도 개선 노력을 시작할 때”라고 덧붙였다.한 대형로펌의 ISD 대응 팀장은“우리 기업의 해외투자도 늘어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용할 수 있는) ISD 자체를부정하기보다는 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체계적 대응을 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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