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다음 주에는 광주에서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퀴어문화축제, 퀴어 퍼레이드 혹은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1969년 미국 뉴욕시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로 1970년에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성소수자 정체성과 문화를 알리고 함께 즐기는 자리다. 퀴어 퍼레이드에 가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를 활용한 물품이나 도서 전시와 판매 부스, 성소수자 관련 이벤트, 성소수자 인권옹호 캠페인, 무지개 깃발 행진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퀴어 퍼레이드에는 소위 ‘동성애 반대자’들도 모인다.
물론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서울역에도 있고, 지하철에도 있고, 대학 캠퍼스에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퀴어 퍼레이드의 규모가 커지고 서울 외 지역에서도 개최되기 시작하면서, 동성애 혐오자들 또한 더 잘 보이는 곳에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인천에서 열린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는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과 성소수자 혐오세력 간의 충돌, 경찰의 부적절한 방관, 가짜 뉴스 전파로 난장판이 되었다. 부산에서도 큰 충돌은 없었지만 동성애자가 에이즈를 전파한다는 등 동성애 혐오를 기조로 하는 ‘레알러브시민축제’가 근처에서 열렸다.
한국은 성소수자라는 개념이 충분히 이해되거나, 사회적으로 수용되거나, 제도적으로 반영된 나라가 아니다.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가 혼동되고, 타고난 성별의 전형에 맞지 않는 태도나 습관이 ‘사내답지 못하다’거나 ‘여자애 같지 않다’며 공공연하게 폄하되고, 동성결혼은커녕 UN 권고사항인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성소수자에 한정되지 않는 시민동반자제도 논의도 제자리걸음이다. 제자리걸음이기만 해도 다행이다. 현실은 그만도 못하다.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금지를 적시한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조례안이나 학생인권조례안이 일부 종교의 조직적 반대로 좌절되고, 동성애 반대 기도회가 열린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 성소수자 인권 항목이 아예 삭제되는 큰 후퇴가 있었는 데도, 혐오세력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NAP에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으니 결국은 동성애 합법화 계획이라며 혈서와 삭발까지 동원하며 반대했다. 혐오가 더 당당한 사회다.
이런 현실 때문에, 한국의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 인권문제를 가시화하는 사회 운동적 의미가 크다. 축제라는 표현을 쓰고 애써 흥겨운 분위기를 내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딱히 축하할 일이 없다. 당신들이 아무리 보기 싫어하고 아무리 ‘반대’해도 우리가 여기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라도 직시하라는 비명을 계속 질러야 하는 한, 이 축제의 하루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순간들로 여백 없이 메워진다.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동성애 OUT”이라는 손피켓에서부터 “동성애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같은 혐오발언까지, 성소수자 혐오에는 수많은 단계의 행동과 언어가 촘촘하고 풍부하게 주어져 있다. 나는 저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하기도 쉽고, 반대로 나는 이만큼이나 신실하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하기도 쉽다. 가능한 행동의 범위가 넓다.
지금 한국에서는 성소수자 혐오가 더 쉽다. 어쩔 수 없이 살아 있는 것보다, 견딜 수 없어 소리 높여 외치는 것보다, 어떤 식으로든 각오를 하고 축제의 거리에 서는 것보다, 무지개 배지를 달고 군중 사이를 오가는 것보다, 저 많고 많은 혐오의 어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더 쉽다.
쉽다고 틀린 길이고 어렵다고 옳은 길이 아님은 당연하다. 성소수자 혐오는 틀린 길이다. 2018년 한국에서는, 틀린 데다 쉽기까지, 염치없게도 참으로 쉽기까지 한 길일 뿐이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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