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취업준비생수(73만2,000명)는 2003년 이후 최대치를 찍었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불리는 기존 시장에서 이들의 일자리를 모두 찾기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새 방식으로 일자리를 발굴해야 했고, 그 답으로 사회적 기업(공적 가치를 우위에 두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품 혹은 서비스를 생산ㆍ판매하는 기업)에 주목했다. 특히 청년들이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적 경제’라는 새 방식의 경제활동에 도전하길 바라며 각종 지원책을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문득 몇 년 전 막연하게 생각해 본, 서랍 구석에 꾸겨져 있던 사회적 기업 창업 관련 메모가 떠오르면서 이번 인터뷰가 시작됐다. ‘나도 도전할 수 있을까.’
“글쎄 몇 점을 줄까요. 100점 만점에 50점? (웃음) 아니 40점이 좋겠네요. 열심히 작성한 건 인정해요.”
지난 11일 경기 성남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무실에 만난 김인선(58) 원장이 기자가 만든 사회적 기업 창업 계획서를 한참 읽어본 뒤 던진 첫 마디였다. ‘1세대 사회적 기업가‘로 초보창업자들의 사업계획서를 수백 번, 수천 번은 봤을 그의 눈에 기자의 사업계획서는 낙제점을 간신히 면할 수준이었나 보다.
평가는 “수요는 있겠는데, (사업) 출발 지점에 대한 분석이 약하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초보 창업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라고 한다. 김 원장은 “청년들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아이디어의 완성도는 높은데 출발 지점에 대한 분석이 약한 ‘구멍’이 보인다”고 했다. 사회적 기업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 요즘 말로 ‘꿀팁’이 될만한 것을 찾기 위해 신랄한 평가에 쓰라린 마음을 안은 채 인터뷰는 이어졌다.
◇사회적 기업, 시작도 끝도 ‘소셜 미션’
기자가 만든 사업계획서 제목은 ‘옆집 이모네 어린이집’.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싶은 3, 40대 경단녀(경력단절여성)와 직장을 은퇴한 50대 이상 여성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이들을 고용해 맞벌이 부부 수요가 큰 시간제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게 계획서의 골자다.
60점이나 깎아먹은 감점 요인을 뜯어보니 명확한 ‘소셜 미션’과 이에 대한 동기와 의지 부족이 가장 컸다. 사회적 기업 분야에서 흔히 말하는 소셜 미션은 기업 활동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문제를 말한다. 일반 기업의 목표가 이윤 창출이라면, 사회적 기업은 소셜 미션 수행이 가장 상위에 있는 목표다. 그래서 사업계획서도 소셜 미션이 뚜렷하고 이를 수행하고자 하는 기업가의 동기가 얼마나 강한 지가 1순위 평가기준이다. 김 원장은 “사회적 기업가는 사회 문제 중 한 가지에 주목해 그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사람”이라며 “경단녀 고용과 맞벌이 부부를 위한 안정적 보육 서비스 제공이라는 두 가지 큰 소셜 미션이 혼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명확한 동기도 부족하다고 했다.
소셜 미션이 확고하면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끌고 갈 수 있다.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사회적 기업(두손컴퍼니)을 만든 한 창업자는 노숙인이 만든 ‘특별한’ 옷걸이(옷걸이 일부에 광고를 넣은 제품)를 판매해보겠다고 초반 사업 구상을 했다. 초반에는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창업 6년이 된 지난해 월 매출 2억원을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마케팅을 강화하고 판로를 찾는 데 집중해 어려움을 타개했겠지만 두손컴퍼니는 달랐다. 노숙인 등 취약계층 일자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사업을 구상하는 데 집중했다. 결국 온라인으로 물건을 파는 다른 사회적 기업 등에게 맞춤형 물류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자리 만들었다. 김 원장은 “두손컴퍼니 사례처럼 기업가가 생각하는 소셜 미션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면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개선해 가면서 결국 기업을 끌고 나가지만, 그 동기가 부족하면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 초창기에는 이 소셜 미션이 취약계층 고용에 집중돼 있었다.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쿠키를 굽는다거나 위안부 할머니들과 액세서리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달 기준 2,030개로 늘어난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일자리(약 4만4,250개)의 60%가 취약계층에게 돌아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사회적 기업의 소셜 미션은 교육, 사회복지, 환경, 청소, 문화예술,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려는 이들도 보다 넓은 시야에서 도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구체성이 관건이다
다음 감점 요인은 ‘공동체’에 대한 구체적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보육서비스는 이용자(부모)가 서비스 제공자를 신뢰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해, ‘마을공동체’ 기반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계획서에 적어놓고 그 공동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김 원장은 “지역 기반 사업을 강조했지만 일반적으로 직장 어린이집을 제외하면 가까운 거리 시설을 모두 이용한다”며 “공동체를 어떻게 활용하는 지가 결국 이 사업의 차별성이 될 텐데 그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미 있는 단체를 활용하겠다거나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 방안이 덧붙여져야 한다는 의미다.
앞으로 국내 사회적 기업은 지역 문제를 기반으로 한 사례가 활발해질 것으로 김 원장은 전망했다. ‘지방소멸’이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활발해지는 한편 주민자치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지원사업(청년이 지역사회 문제를 그곳 자원을 활용해 해결하는 사업 모델)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흐름을 읽고 사회적 기업에 도전한다면 정부 지원을 받아 보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셈이다. 때문에 사업의 기초를 다질 때부터 지역 안에서 어떤 공동체를 꾸려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할 수 있을지, 그 현실적 방안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사회적 기업뿐 아니라 어떤 기업을 창업할 때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데 빠진 항목들도 지적 받았다. ▦기업가 자신의 역량 분석 ▦계획한 사업과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에 대한 시장 조사 ▦어려움을 같이 극복할 수 있는 동료 혹은 협력자(네트워크) 등이다. ‘내가 이렇게 좋은 일,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데 모두가 도와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금물이다. 어린이집 시설을 치안센터, 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임대료 부담을 낮추겠다는 사업 계획에 대해 김 원장은 “임대료를 낮추려고 고민한 지점은 좋지만, 이런 협력이 잘 되지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계획 단계에서부터 보다 구체적으로 협력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시간제 보육이라는 비슷한 사업 방식을 채택한 기업들에 대한 조사도 부족했다. ‘옆집 이모네 어린이집’은 조밀하게 파트타임 직원의 근무일정을 편성해 최대한 긴 시간 운영하는 공간으로 구상됐다.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지 못해 곤란한 부모들을 위한 시간제 보육 서비스를 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문제는 유사한 방식으로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있지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 원장은 “어떤 기업도 시장 조사를 하지 않고 신제품을 내지는 않는다”며 “사회적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기존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을 분석하고 이를 보완해 새 사업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면 같은 문제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필수
인터뷰 내내 시쳇말로 ‘팩폭’(팩트폭력)이 이어졌다. 사실을 나열할 뿐인데 뜨끔하고, 사실이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사실 소소한 칭찬이 절실했다) 그나마 40점이라도 준 까닭을 물었다. 김 원장은 “파트타임 일자리를 지역에서 생활서비스 수요를 파악해 만들어 보겠다는 아이디어에 준 점수”라며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수익성이 높지 않은 이유 등으로 민간 영역에서도 뛰어들지 않는 그 ‘틈새’를 발견하는 게 사회적 기업가의 일”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 기본 정신에 충실한 아이디어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특히 수요가 있는 시간제보육에 주목했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원하는 여성 인력을 활용하겠다는 점도 현실성 측면에서 점수를 얻는 요인이 됐다.
40점짜리 계획서지만 발전 가능성은 있냐는 질문에 김 원장은 최근에 인상 깊었던 사업계획서를 소개했다. 그는 “할머니가 폐지를 줍는 일을 하시는 데 소득도 낮고 환경도 위험한 상황을 개선하고 싶어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청년이 있었다”며 “폐지 이동을 손쉽게 하겠다며 만든 시제품이 참 볼품 없었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와 태도가 높게 평가돼 지원을 진행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소셜 미션에 대한 의지만 확고하다면, 즉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 있다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응원으로 들렸다.
진흥원이 그런 예비기업가들을 물심양면 지원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보였다. 진흥원은 사회적기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위해 육성프로그램, 경연대회 등을 개최하는 한편 금융ㆍ투자ㆍ인건비 지원 등 다방면에 실무적인 지원책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일을 해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만큼, 일을 하면서 내가 기쁨을 느끼고 그 일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로 평가 받는 것도 가치가 있다”며 “(사회적 기업 창업) 도전을 한다는 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청년들이 그런 도전을 많이 할수록 그들을 돕는 시스템도 개선ㆍ강화 될 것”이라며 청년들의 도전을 응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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