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스튜핏 아이디(Hello stupid ID)…” 자축 대신 경고다. 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가 올해 데뷔 10년을 기념해 지난 10일 낸 노래 ‘삐삐’의 가사는 날카롭다. 곡은 팬 대신 비하와 혐오의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는 ‘악플러’를 향한다. 선정적인 언론도 비판의 대상이다. “요즘엔 뭔가요 내 가십”. 아이유는 ‘삐삐’ 뮤직비디오에서 넋이 나간 채 노란 신문에 둘러싸여 있다. ‘아이유 잠옷 셀카 논란’ 같은 선정적인 보도로 홍역을 치른 아이돌의 ‘옐로 저널리즘’에 대한 일갈이다. 아이유가 10주년 기념곡으로 ‘삐삐’를 택한 뒤 “이 선 넘으면 침범”이라고 읊조린 걸 보면 단단히 벼른 눈치다. 아이유는 뮤직비디오에서 어항에 발을 담고 있다. 방에 큰 금붕어 그림을 걸어둔 아이유는 금붕어처럼 어항에서 관상용으로 소비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체조경기장 2회 공연 매진시킨 유일한 여성 솔로 가수
이 뾰족한 노래는 대중적으로도 인기다. ‘삐삐’가 15일까지 6일째 멜론 지니 벅스 등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아이유는 신기록까지 세웠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공개 당일 하루 동안 ‘삐삐’를 들은 사용자는 146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4년 만의 최고 기록이다. 멜론이 2015년 차트 순위 집계 시스템을 바꾸고 난 뒤 뽑은 ‘24시간 최고 이용자 수 톱10’엔 ‘스물셋’ 등 아이유가 부른 곡이 절반을 차지한다.
열성적 팬덤의 크기는 방탄소년단 등 인기 남성 아이돌그룹과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아이유가 신곡을 내면 관심을 보이는 청취자의 폭은 넓다. 아이유가 다음달 17,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 공연 ‘이 지금’의 티켓은 예매 시작 1분 만에 동이 났다. 1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큰 경기장에서 연속 2회 공연을 열어 티켓을 모두 판 여성 솔로 가수는 여태 한 명도 없었다. 이효리조차 7,000석 규모의 잠실실내체육관에서 2008년 단독 공연을 연 게 전부였다.
‘성적 대상화’에 균열 내는 ‘국민 여동생’
아이유는 노래 ‘좋은 날’에서 3단 고음으로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고 고백한 뒤 “아이쿠”란 귀여운 탄식을 내뱉어 ‘국민 여동생’이 됐다. 2010년 아이유가 17세가 되던 해였다. 20대 가수 중 스타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아이유가 독특한 이유는 따로 있다. 티 없이 맑은 소녀의 모습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그 틀을 깨려는 시도를 거듭해서다.
시작은 2013년 낸 3집 ‘모던 타임스’였다. 아이유는 ‘좋은 날’을 패러디해 직접 작사, 작곡한 ‘싫은 날’에서 “저 사람들은 왜 웃고 있는 거야. 아주 깜깜한 비나 내렸음 좋겠네”라며 자의식을 드러낸다. 모험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아이유는 2015년 발표한 노래 ‘스물셋’에서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라며 도발한다. 하얀 천처럼 순수하기만 한 아이유는 없다. 그는 2008년 9월 발라드곡 ‘미아’로 데뷔했다. 당시 15세였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순수한 아이돌로 살던 ‘국민 여동생’은 여성 음악인으로서 욕망을 드러내며 반전을 꾀했다.
소녀에서 어른이 된 그가 세상에 내놓는 음악은 잡음을 내기도 했지만, 성 담론이나 여성의 주체성을 논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대중 음악 시장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히트곡이 그만큼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유는 성적 대상화가 되기 가장 쉬운 K팝 시장에서 방황하고 때론 자가당착에 빠져 모순을 드러내지만, 여성 음악인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음악으로 보여준 의미 있는 인물”(김윤하 음악평론가)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 밀어붙이는 행동파”
아이유는 전략가다. ‘꽃갈피’ 시리즈로 김광석의 노래를 다시 부르며 30대 이상 관객들을 추억으로 포섭한 그는 ‘팔레트’와 ‘삐삐’ 같은 힙합 스타일의 노래로 젊은층도 놓치지 않는다. 아직 젊지만 가수로선 “음색이 탁월”(가수 최백호)하고, 프로듀서로선 “관찰력이 좋고 협업을 이끌어 내는 능력”(조영철 미스틱엔터테인먼트 대표)이 뛰어난 게 장점이다. 아이유는 신인 작곡가 김제휘를 발굴해 노래 ‘밤편지’에서 서정성을 극대화했고, 바이올린을 켜는 인디 음악인 강이채에게 직접 곡 작업을 의뢰해 식상함을 지우려 했다. 그런 “아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고 해 내는 용기”(아이유 출연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김원석 PD)가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파격으로 때론 큰 역풍을 맞기도 한다. 아이유는 2015년 낸 노래 ‘제제’로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주인공인 소년 제제를 성적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롤리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금’에 충실… 앞으로 10년 덜 치열했으면”
무대에서의 아이유와 올해 스물다섯이 된 이지은은 다르다. 이지은은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민박 손님들과 아직도 연락하며 지낸다. “어설프고 행동도 느릿하지만 정이 많아”(‘효리네 민박’의 마건영 PD) 주변에 사람이 많다.
아이유의 SNS 아이디는 ‘dlwlrma’다. 얼핏 보면 뜻 없는 알파벳 같지만 한글 타자로 쓰면 ‘이지금’이란 단어가 나온다. 아이유는 4집 ‘팔레트’에 실린 곡 ‘이 지금’에서 “이 하루 이 지금 우리 눈부셔 아름다워”라며 “오늘의 불꽃놀이는 끝나지 않을 거야”라고 노래한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는 아이유의 바람은 무엇일까. 그는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10년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덜 치열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