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4년여를 돌아보면 한마디로 70년대를 향한 복고(復古)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때의 인물에 그때의 사고방식으로 일관하다가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자초했다. 최순실이니 세월호니 하는 것들은 오히려 부차적 요인이고 2010년대에 낡은 사고방식을 유지했기 때문에 결국은 감옥에까지 들어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과연 박근혜 정권이 시대정신에 맞춰 잘 가고 있는데 최순실의 국정 개입이나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났다면 우리 국민이 그것만 갖고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을까?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통치 스타일에 대한 많은 국민의 염증과 분노가 누적된 상황에서 그런 일들이 불을 붙이며 사태는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촛불 혁명’을 명예로 여기며 등장한 문재인 정권의 시계바늘은 지금 몇 시를 가리키는 것일까? 지난 1년 반을 돌이켜보면 좋게 말해야 노무현 정권의 기시감(旣視感)이고 좀 심하게 말하면 ‘80년대 운동권’의 이념 놀음이다.
이미 인사의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장관으로서의 기본 소양도 못 갖춘 이들이 줄줄이 입각했다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나라 안보의 기본 축이어야 할 국방부 장관은 잦은 설화(舌禍) 끝에 결국은 물러났고 다른 건 몰라도 말을 함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어야 할 통역 출신의 외교부 장관은 말 실수로 인해 위태위태하다.
그렇다고 딱히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는 장관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신임 교육부 장관이란 사람의 언어 사용 수준은 오히려 인사권자의 판단력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다.
그런데도 이 정권 사람들의 언사(言事)에서 겸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국정을 걱정하는 국민의 염장을 지르는데 일가견이 있다. 압권은 역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다. 처음에는 ‘20년 집권론’ 운운하더니 얼마 안 가서 ‘50년 집권론’을 들고 나왔다. 정당 정치인이 100년 집권론을 내세우건 1,000년 집권을 내세우건 그건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보여 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굳이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야당이야 발끈했겠지만 야당이 야당다웠으면 아예 그런 말도 안 나왔을 것이다.
필자의 귀를 의심하게 만든 것은 오히려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제가 지금까지 공직생활하면서 들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라는 발언이다. 과연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여당의 대표가 다른 한편으로는 20년, 50년 집권 운운하면서 민생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이 같은 무책임한 이야기를 내뱉어도 되는 것인가? 특히 지금 국민이 어느 때보다 경제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이때에 명색이 7선의 중량급 정치인이 국민의 아픈 마음에 소금을 뿌리는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안을 뒤덮을 만큼 심각한 문제는 미래의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18년도 끝나가고 있다. 적어도 10년 후 20년 후 대한민국의 모습은 이런 방향이 될 것이라는 그림이라도 내놓고 국민이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해야 하는 때가 된 것 아닐까?
20년은커녕 10년이라도 계속 집권하려면 무기력한 야당 때문에 방심하지 말고 더 겸손하면서 유능하게 일을 해내야 할 것이다. 이 정권 사람들이 진정 겸손하고 유능하다면 필자부터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적어도 10년 이상 공부해온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더욱 그렇다. 그런 겸손과 유능을 한눈에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미래를 향한 큰 그림이다. 그런 그림이 나오지 않는 한 이 정권 또한 시대정신을 놓치고 표류하지 말란 법이 없다. 3년 반이나 남은 것이 아니라 3년 반밖에 안 남았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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