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미소와 낙천적인 성격으로 골프 팬들로부터 ‘플라잉 덤보’라는 애칭으로 사랑 받았던 전인지(24ㆍKB금융그룹)는 지난 2년간 좀처럼 시원한 미소를 보이진 못했다. 우승 기회마다 번번이 뒷심 부족으로 준우승에 머물더니, 올해 들어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톱10에 드는 일도 부쩍 줄어들면서다. 성적이 떨어지니 자신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자신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도 달리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겪는 일들에 흔들렸고, 그런 자신의 모습까지 원망하면서 부진의 늪에 빠졌다. LPGA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2015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역대 메이저 최저타수 기록으로 우승하며 LPGA 신인왕과 최저 타수상을 거머쥔 재작년의 영광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듯했다.
전인지는 그러나 2018년 시즌 막판 국내에서 열린 LPGA 주관 대회 두 개를 모두 휩쓸며 2년간 꾹 눌러온 환호를 한껏 내질렀다. 전인지는 14일 인천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파72ㆍ6,316야드)에서 열린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기록,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공동선두 그룹에 2타 뒤진 공동4위로 시작한 이날 경기에서 전인지는 전반 9개 홀에서 5개의 버디를 잡아 선두경쟁서 우위를 점했고, 후반엔 이를 잘 지켜냈다. 2위 찰리 헐(22ㆍ잉글랜드)과 타수를 3타 차로 벌린 17번홀(파3) 파 퍼팅을 성공한 뒤, 우승을 예감한 듯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갤러리들과 손을 마주치기도 했다.
그의 이날 우승은 지난 주말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8개국 국가대항전 UL인터내셔널크라운에 이은 2회 연속 우승이다. LPGA 투어 성적으로는 2016년 9월 에비앙 챔피언십 이후 2년 1개월 만의 우승이자 시즌 첫 승(통산 3승)째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전인지는 ‘우승하는 법’을 하나 더 깨우친 모습이다. 전날 열린 3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1개를 잡아내며 6언더파 66타를 몰아친 전인지는 1,2라운드 부진을 떨치고 단숨에 우승 후보로 올라섰다. 이 때 전인지는 “내가 좋아하는 거리인 60~70m를 남겨두자고 마음먹었는데, 의도대로 돼 많은 버디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바람을 등져 더 멀리 칠 수 있는 경우에도 유혹을 참고 내 플레이를 했다”며 장타의 유혹을 접은 게 되레 우승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인지는 더블보기를 한 차례씩 범하며 선두권과 멀어졌던 1,2라운드와 달리 3,4라운드에선 보기만 하나씩 범했을 뿐 이틀 모두 7개의 버디를 낚아 6언더파를 기록, 우승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우승 후 전인지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우승이 확정됐던 순간 난 힘들었던 시간과, 끝까지 응원해준 분들을 생각해 눈물이 났다”고 했다. 전인지는 “사람으로서, 여자로서도 참기 힘든 댓글들이 많았고, 머릿속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며 “그 말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내 모습이 더 싫었고, 너무 무서워서 숨고도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상대선수를 깎아 내리기보다 같이 응원하고 어우러지는 따뜻한 환경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몇 달 전 건강이 악화됐던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드러냈다. 어린 시절 맞벌이 부모님 때문에 많이 보살펴 주시던 할머니가 지난 8월 의식을 잃어 가슴이 아팠다는 그는 “내 골프경기를 보는 게 하루 일상이던 할머니께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속상했다”며 “오늘 이 기회를 빌어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세계랭킹 1,2위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박성현(25ㆍKEB하나은행)과 에리야 쭈타누깐(23ㆍ태국)은 무승부로 끝났다. 두 선수가 모두 12언더파 276타로 공동2위에 머물며 박성현은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켜냈다. 이번 대회엔 나흘 동안 6만8,047명의 유료 관중이 입장해 작년에 세웠던 이 대회 최다 관중 기록(6만1,996명)도 새로 썼다. LPGA는 올해로 막을 내리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을 대신해 내년부턴 부산에서 BMW 챔피언십을 개최한다.
인천=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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