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를 휘두르는 등 남편에게 수시로 폭력을 행사해 상습특수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지난해 6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1ㆍ2심을 거쳐 어렵게 감형 받았는데, 사건 배당이 잘못됐다며 대법원이 1심부터 다시 재판하라 판결한 것. 상습특수상해 혐의는 형법상 단기가 징역 1년 이상에 해당하는 범죄로, 법원조직법에 따라 1심을 지방법원이나 그 지원의 합의부에서 진행해야 한다. 대법원은 이를 근거로 A씨 사건 심리가 당초 지원의 단독 재판부에서 진행된 걸 문제 삼았다. 법원의 실수로 A씨는 지난한 법정 싸움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이처럼 일선 법원이 재판 절차를 혼동해 사건을 잘못 배당하고, 이로 인해 다시 재판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원의 착오로 사건 배당이 잘못된 경우가 2016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921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재배당(8,332건)의 11%에 해당하는 수치다.
법원이 착오로 재배당한 사건 중 44%(409건)는 단독과 합의 사건을 혼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12월에는 행정 사건인데 민사재판으로 잘못 진행된 사건을 처음부터 행정재판으로 진행하라고 대법원이 판결하기도 했다. 또 착오로 인한 재배당은 고등ㆍ지방법원보다 규모가 작은 ‘지원’에서 많이 발생했다.
사건이 잘못 배당된 경우 상급법원은 이를 파기 이송하는데, 이 경우 사건 당사자들은 사실관계나 법리와 상관없이 절차상의 문제로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결국 실수는 법원이 하고 그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는 격이다. 금 의원은 “판사들의 반복된 실수는 법원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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