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한국은행과 부동산 왕국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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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은행과 부동산 왕국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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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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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랜드의 앨리스”, 한때 유럽중앙은행에 붙었던 이름이다. 야심차게 새로운 통화공동체가 출범했지만 경제가 살아나지 않던 시절, 유럽연합의 집행당국은 유럽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켜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시절 남들은 다 어려운데 너만 혼자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해 “유로랜드의 앨리스”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의 고집 덕택에 오늘날 유로화는 제2의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하였다.

최근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잡기 위한 고강도의 대책이 연일 발표되고 있다. 인허가 규제, 보유세 강화, 청약 및 대출제한 등 모든 수단을 썼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주춤하다가 다시 상승하는 등 좀처럼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금리가 아쉽다. 급기야 총리와 주무장관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부동산 왕국답게 부동산이 자산의 대부분이고, 수십 년간의 경기부양책은 부동산규제의 완화였고, 부동산 가격을 견인하고 있는 서울을 중심으로 개발이 집중되어왔다.

정부가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써서 최선의 결과를 얻고자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금리이다. 정치적 의지로 결정된 금리는 지금은 효과를 보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시장의 부담으로 남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통화정책은 신뢰를 상실하고 정책경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돈의 관리를 정치로부터 분리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 방법이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이다.

부동산이라는 특정 목적만을 위해 금리라는 칼을 쓰기는 어렵다. 금리는 수술용 메스가 아니라 커다란 검이다. 휘두르는 순간 가계부채, 채권 및 증권, 자본유출입, 고용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금리를 손대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하며, 전문가들이 중립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중앙은행 독립성의 핵심을 ‘지시로부터의 자유’라고 한다. 일반인이나 전문가들이 금리의 방향성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힘을 가지고 있는 정부가 이야기 하는 것은 ‘지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방인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인식은 금융위기의 대응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현대적 의미의 독립성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래서 정부와의 공조도 중요하다. 합리적 관계는 선진국의 사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이나 독일연방은행은 조약과 법에 물가안정을 달성하는 범위 내에서 정부의 일반경제정책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행법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독립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중앙은행이 무한정 자유로운 영역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독립성이 있는 조직은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다. 통제받지 않는 권한은 민주주의 원리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립기관들은 국회와 국민에 대한 강한 석명의무를 지며 이는 부족한 민주적 정당성을 충족시키는 기제이다. 그래서 석명의무는 독립성과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오늘날 많은 중앙은행들이 외부와 소통을 강화하는 이유이다.

금리결정을 앞두고 지금의 상황이 한국은행의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올리면 가계부채, 동결하면 한ㆍ미간 금리격차 등이 문제된다. 진퇴양난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은행은 당당한 근거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비록 그 결정이 총리나 국토부장관이 주문했던 것과 같더라도 상관없다. 어디에서라도, 어떤 상황이더라도 소신있게 자신의 일을 하는 현명한 앨리스가 되면 된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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