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은퇴란 단어가 없다. 이제야 산에 다니기 딱 좋은 나이를 맞았다”며 새로운 등정 루트를 개발하기 위해 산에 올랐던 김창호 대장이 결국 산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49세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끝까지 ‘알파인 스타일’을 고집한 김창호 대장은 세계 산악계의 전설 라인홀트 매스너(74)를 따 ‘한국의 매스너’로도 평가된다. 알파인 스타일은 지원조 도움 없이 고정 캠프나 다른 등반대가 설치한 고정 로프, 심지어 산소 기구도 사용하지 않은 채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계속 밀어붙이는 등반 방식이다.
2005년 7월 낭가 파르바트(8,215m)를 시작으로 2013년 5월 에베레스트(8,848m)까지 세계 최단기간(7년 10개월 6일) 만에 8,000m급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산소통 없이 무산소로 올랐다. 14좌 무산소 등정자는 세계 역사상 19명뿐이고 한국인으로는 최초다.
2017년에는 국내 최초로 황금피켈상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그보다 전인 2012년에는 ‘황금피켈상 아시아’상을 받았다. 황금피켈상은 프랑스 몽따뉴 매거진이 한해 동안 가장 뛰어난 등정을 한 산악인(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산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린다. 수상 자격을 무산소, 알파인 스타일 등반으로만 제한해 ‘결과보다 과정에 의의를 두는 상’으로 평가받는다. 황금피켈상 아시아상은 ‘월간 사람과 산’이 제정, 아시아 최고 등반가들에게 수여한다.
1969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무역을 하며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서” 1988년 서울시립대 무역학과에 입학했는데, 신입생 때 산악부에 들어가 산과 인연을 맺은 후 지금의 전문 산악인이 됐다. 무역 때문은 아니지만 등정으로 세계를 누빈 셈이다.
동료 산악인을 먼저 떠나보낸 경험도 많았다. 특히 2013년 5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하다 서성호 대원이 숨진 사고는 오랜 기간 김창호 대장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는 귀국 후 기자간담회에서 “해냈다는 뿌듯함과 동료를 데리고 오지 못한 아쉬움이 동시에 있다”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너무 힘들다”며 동료를 잃은 슬픔을 전했다.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을 찾기 위해 네팔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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