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새벽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 지방 미르사라이 우파질라(한국의 ‘읍’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대원들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단층 건물을 방글라데시 ‘대테러-반부패 엘리트 부대’인 신속대응부대(RAB)가 급습했다. 현지 일간 ‘더 데일리스타’가 6일자에 인용한 RAB 미디어국 무프티 마흐무드 칸 사령관에 따르면 한 시간여의 총격전과 폭발 끝에 시신 두 구가 발견됐다. 이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자마뚤 무자히딘 방글라데시(JMB)’ 대원들이다.
최근 RAB의 대테러 급습 작전은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고 있다. 작전은 JMB를 상대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4일에는 치타공 지역 찬드가온에서 범이슬람 글로벌 정치운동 조직인 ‘히즈붓 타흐리르’의 방글라데시 간부가 체포됐다. 6일에는 북서쪽 랑푸르 지방 가이반다 지구에서 종교정당인 ‘자마떼 이슬라미(JeI)’의 당원도 붙잡혔다. JMB, 히즈붓 타흐리르, JeI 등 다양한 성향의 이슬람주의 세력을 상대로 사방에서 분투 중인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인구 90%가 무슬림으로 분류되지만, 세속주의(Secularism, 정교분리주의) 전통이 강한 사회다. 그럼에도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세속주의 진영과 이슬람주의 세력 간 갈등은 정치상황과 맞물려 늘 상존해 왔다. 예컨대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의 대표격인 JeI는 현 야당인 ‘방글라데시 민족당(BNP)’의 오랜 정치 파트너다. BNP는 종교정당은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까지도 정치적 편의에 따라 보듬어 왔다. 이런 BNP마저 셰이크 하시나(총리) 정부의 탄압을 받는 것처럼 비치는 건 극단주의 단속과 정치적 박해의 경계가 모호한 데에도 상당 부분 기인한다. 실상 세속주의 성향인 하시나 정부는 비판 세력은 누구든 용납하지 않는 ‘독재형 세속주의’로 향하고 있다는 게 방글라데시 국내외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 8월5일 알자지라 영어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즉결 처형(extrajudicial killing) 등 현 정부의 인권침해 실상을 비판했던 방글라데시 사진가 샤이둘 알람이 그날 밤 자택에 들이닥친 사복경찰 20여명에 질질 끌려가던 장면은 하시나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 수준을 짐작케 했다. 아와미 리그(집권여당)와 BNP(야당), 바로 이 두 거대 정당이 오는 12월 총선을 앞두고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지하디 세력이 최근 수년간 방글라데시로 적극 파고드는 건 이 같은 국내정치 상황과 연계돼 있다. 국제위기그룹이 올해 2월 발행한 보고서는 “전범 재판과 (세속주의 성향의) 샤바그 운동이 이슬람주의자들과 지하디 활동에 새로운 배경막이 됐다”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언급한 ‘전범 재판’은 2009년 시작된 국제범죄재판을 가리킨다.
이 재판은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독립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마련된, 말하자면 전후(post-conflict) 정의실현 메커니즘이다. 당연하게도 친 파키스탄 민병대 노릇을 했던 JeI, 그리고 이들의 정치 파트너 BNP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소된 이들 다수가 JeI 출신이고, BNP 소속도 3명이나 된다. 그러나 이 재판이 ‘국제재판’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자, 과거 청산의 기회가 결국 ‘하시나의 정적 제거’ 용도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이 재판은 ‘방글라데시 무슬림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고, 세속주의 진영은 보다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하며 충돌했다. 일례로 2013년 2월 5일 JeI 지도자 압둘 카데르 몰라에게 종신형이 선고되자 이슬람주의 진영은 몰라의 석방을 요구한 반면, 세속주의 진영은 사형을 요구하면서 수십만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후자 쪽의 시위대가 ‘세속주의 운동’으로 발전한 건 이 무렵이다. 이른바 ‘가나 자가란 만치 운동’, 혹은 시위장소였던 다카의 샤바그 광장 명칭을 딴 ‘샤바그 운동’으로 불린다. 무신론자, 세속주의자들을 향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잇따른 공격이 시작된 것도 이 즈음이다. 전례 없이 잔혹한 참수형 암살이 이어졌다.
방글라데시와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2013~2015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참수당한 무신론자와 세속주의 표방 블로거, 성 소수자, 각종 소수종파 및 소수종교 신도들은 40명 안팎에 이른다. 이런 암살은 올해 6월까지도 계속됐다. 지난 6월2일, 좌파 지식인이자 ‘비샤카 프라카샤니’라는 출판사의 운영자인 샤자한 마추(57)는 다카 외곽 마을 문쉬간지의 한 약국에서 오토바이 두 대를 타고 나타난 괴한 네 명의 총격으로 즉사했다. 세속주의자 암살에 총기류가 사용된 건 처음이었다.
연쇄 암살에 출현하는 극단주의 조직은 크게 두 그룹이다. 알카에다 연계조직 ‘안사룰라 알 이슬람’(이하 안사룰라)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한 JMB다. 전자가 대학생 등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을 모집 대상으로 하면서 이슬람주의에 사상적으로 경도돼 있다면, 후자는 이슬람 종교학교 ‘마드라사’에서 주로 충원하고 종파주의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안사룰라가 예언자 무하마드를 모독한 개인 암살에 치중하는 반면, JMB가 각종 소수 그룹 자체도 공격 대상에 올려 놓는 건 이런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두 조직은 경쟁 관계에 있다거나 상호 적대적 성향을 보이진 않는다. 조직원 구성의 경계가 모호하기까지 하다. 2016년 7월1일 수도 다카의 외교가에 있는 고급 카페 ‘홀리 아르티잔 베이커리 카페’에서 발생한 테러도 이 두 조직 가운데 누구의 소행인가를 두고 여러 분석들이 쏟아졌다. 결국 두 조직의 ‘합작’이라는 게 가장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로 점쳐졌다. 이슬람주의가 ‘탄압받는 듯’ 보이는 국내 정치 상황에 적극 반응하고, 글로벌 지하디즘 번성이라는 자양분을 받아 재생ㆍ부활한 방글라데시의 극단주의는 적어도 현재까진 경쟁관계보다는 ‘합작’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혹시 있을지 모를 극단주의 조직과 이슬람 정치세력과의 연계는 보다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수요일(10일) 다카 법원은 14년 전의 한 정치테러에 대해 휘발성 높은 판결을 내렸다. 앞서 2004년 8월21일, 당시 야당이었던 아와미 리그의 집회장은 수류탄 연쇄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암살 대상이었던 하시나는 목숨을 건졌지만 24명이 숨졌고 수백명이 부상당했다. 이후 수년간 진행된 수사로 이 공격은 당시 ‘BNP-JeI 연립정부’ 내 고위 관료들이 음모하고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하르카툴 지하드가 실행한 ‘정치권과 극단주의자들의 합작 테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법원은 피고인 19명에게 사형을 언도했고, 다른 19명에게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가장 이목이 집중된 인물은 BNP 칼레다 지아 총재(부패 혐의로 수감 중)의 아들이자 모친을 대신해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타리크 라흐만이었다. 그 역시 종신형을 받았다. 이제 코앞으로 다가 온 12월 총선은 BNP가 무력화된 채 아와미 리그의 독무대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2014년 JeI는 출마 금지를 당하고 BNP가 보이콧한 채 치러졌던 총선 이후, 방글라데시 역사상 가장 심각한 폭력이 이어졌던 그 해의 악몽이 다시 엄습하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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