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다 같이 휴대폰을 끄고 별에 몸을 의지해요.’ 지난 9일 서울 구로구 고척돔.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26)는 공연 시작 전 스크린에 이와 함께 ‘우리가 누구인지 잊고 함께 즐겨요’란 글을 띄웠다. 지난해 11월 낸 2집 ‘더 스릴 오브 잇 올’에 마지막 곡으로 실린 ‘원 데이 앳 어 타임’ 노랫말이었다. 이어서 프랭크 오하라의 시구인 ‘침대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이렇게 황홀할 줄이야’와 네이이라 와히드의 시구 ‘꽃의 언어로 얘기하자. 그게 더 쉬우니까’ 등이 차례로 스크린을 채웠다. 스미스가 목가적 문구로 관객들에 띄운 낭만이었다.
스미스의 첫 내한 공연은 따뜻했고 때론 경건했다. 스미스의 감미로우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는 네 명의 흑인 보컬 코러스가 포개져 가스펠처럼 공명했다. 깊은 소리엔 그의 성장통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동성애자인 그가 성 소수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뇌를 종교적으로 푼 노래 ‘힘’의 울림은 컸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에요. 이걸 알려주고 싶어 곡을 썼고요. 난 게이인 게 자랑스러워요.” ‘힘’을 부른 스미스의 말이 끝나자 객석에선 박수가 터졌다. ‘힘’이 끝난 뒤 공연장은 무지갯빛으로 가득찼다. 스미스가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빛깔로 보여준 치유의 무대였다. 그는 공연 마지막을 ‘기도(‘Pray’)’하며 끝냈다. 스미스는 2집을 준비하며 실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부른 ‘투 굿 앳 굿바이’는 더욱 애절하게 들렸다. 스미스는 “우울한 노래들이 많지만 이 공연이 여러분에겐 기쁨을 선사할 수 있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아델과 함께 세계 팝 음악 시장을 주름잡는 청춘스타는 격의 없이 한국 관객과 소통했다. 스미스는 관객을 향해 쉼 없이 키스를 날리고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며 환호하는 관객에 고마움을 표했다. 공연 구성도 다채로웠다. 스미스는 영화 ‘007 스펙터’ 주제가로 쓰인 ‘라이팅 온 더 월’을 웅장한 현악에 맞춰 비장하게 무대를 이끌면서도 ‘오멘’을 부를 때는 ‘춤꾼’이 돼 공연장을 클럽으로 만들기도 했다. ‘오멘’은 전자음악팀 디스클로저가 만든 댄스 음악에 스미스가 보컬 피처링으로 참여해 인기를 끈 곡이다.
변화무쌍한 스미스의 무대에 80여 분 동안 관객의 함성은 끊이지 않았다. 스미스를 세상에 알린 ‘스테이 위드 미’와 ‘아임 낫 디 온리 원’이 흐를 때 관객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스미스는 이 두 곡이 실린 1집 ‘인 더 론리 아워’로 2014년 미국 그래미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 올해의 레코드 등 3개 본상을 휩쓸었다. 스미스의 첫 내한 공연엔 2만 여 관객이 몰렸다. 표는 지난 4월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됐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