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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반도 평화정착과 對유럽 외교의 과제

입력
2018.10.10 18:4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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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 논의의 주체는 남북한과 미ㆍ중ㆍ일ㆍ러 4강이다. 하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정착을 위해선 한반도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유럽연합(EU), 유럽 국가들의 참여와 지지가 효용성을 갖는다. 13일 시작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과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을 계기로 대유럽 외교의 장이 펼쳐진다. 대유럽 외교 강화를 위해선 몇 가지 과제가 따르는데, 이는 유럽 안보정책의 성격과 접근법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한다.

국제 질서는 크게 힘과 규범을 축으로 형성된다. 유럽은 군사력보다는 규범 권력과 인간안보, 재난관리, 국제범죄 등 연성 안보 분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왔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EU와 유럽 국가들은 국제 규범의 수호자, 평화 지원자의 성격을 강조해 왔다.

2차 대전 종전 때까지 유럽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끊이지 않은 분쟁과 갈등 속에서 유럽이 얻은 교훈은 공존의 논리였다. 이후 유럽통합 과정은 지역협력의 모범사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유럽이 단순 동경의 대상일 수만은 없다. 그동안 무수한 실패와 난관들이 있었고, 또 상존하는 문제들과 마주하며 유럽 안보정책은 지금도 정립돼 가는 과정에 있다. 현실적으로 유럽이 미국을 대체할 안보 주체로 떠오를 의지나 능력은 없다. 국제 안보에서 유럽의 역할은 보완적이며, 주로 다자적 차원에서 이루어져 왔다.

EU는 1990년대 후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참여했고, 2000년대 초반 페르손 스웨덴 총리의 방북을 기점으로 일련의 유럽 국가들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및 교류 증진에 나서며 인도적 지원 주체로 부상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이 계속되면서 EU의 공식적 대북 관계는 경색됐고, 일부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외하고는 대북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 유럽의 규범 외교는 법치와 민주주의, 인권 중심의 보편적 원칙을 강조한다. 실제 EU와 유럽 국가들은 북한 인권문제와 비확산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EU와 유럽 주요국들은 최근 한반도의 평화 기조에 고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이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을 기대할 수는 없다. 프랑스 등 여러 국가들이 북한 인권 문제와 비핵화 추진에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보다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 강조하는 규범과 원칙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 줄 때 발전적인 유럽의 대북 관여정책을 유도할 수 있다.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과 기본협정(Framework Agreement), 위기관리협정의 체결을 통해 EU의 주요한 전략적 파트너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위기관리를 비롯한 EU와의 안보 협력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EU 및 유럽 국가들과의 안보협력의 접점은 국제규범과 위기관리를 포함한 연성 안보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의 안보 패러다임도 일정 부분 한반도를 넘어서는 글로벌 안보에의 참여를 보다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유럽 지역의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긴요한 지식, 언론, 정책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최근 활성화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인프라가 4강 국가에 비해 훨씬 미흡한 만큼 보완할 필요가 있다. 평화 중재에 큰 기여를 해 온 북유럽 국가들과의 체계적인 교류 증진도 필요하다.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글로벌 안보 이슈들에 참여하고, 국제 규범의 준수와 확산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일 때 EU 등 국제사회의 지지가 더욱 공고화할 수 있다. 일련의 순방 행사와 ASEM 정상회의가 한반도 평화정착에 있어 EU 및 유럽 국가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이를 위한 대유럽 외교 인프라 강화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재승 고려대 장 모네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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