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부탁합니다, 그리고 함께 갑시다.”
10일 오전 9시 30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다목적홀에서 열린 월례 직원조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전체 공정위 직원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최근 검찰 수사와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공정위 직원들에게 조직의 수장으로서 책임을 표명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과장급 이상 간부에 대한 다면평가를 도입하고, 직원들의 교육ㆍ연수 기회를 대폭 확대하는 사기진작 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벌개혁과 갑을관계 개선 등 굵직한 개혁과제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공정위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에 노출됐다. 지난해 공정거래 관련 민원ㆍ신고는 약 4만2,000건으로 1년 전보다 32%나 늘었다. 공정위 인력은 600여 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대기업 조사를 전담하는 기업집단국이나 프랜차이즈 및 하도급 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직원들이 혹사되고 있다는 지적이 조직 안팎에 비등했다. 최근 공정위 운영지원과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마라톤을 100m 달리기처럼 하고 있다” “출근하기 싫다”는 고충이 쏟아졌다고 한다. 여기에 공정위가 ‘경제검찰’ 지위를 이용해 2012~2017년 대기업에 퇴직간부 채용을 압박했다며 검찰이 전현직 간부 12명을 기소하자 조직 사기는 바닥을 쳤다. ‘적폐조직’으로 몰린 공정위를 떠나 다른 부처로 전출을 희망한다며 신청서를 제출한 직원이 100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김 위원장은 이날 조직을 추스르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먼저 국ㆍ과장 이상 직원에 대해 매년 2번에 걸쳐 다면평가를 실시,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간부들에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또 분기별로 최우수 직원을 선정해 포상휴가(3일)을 줄 계획이다. 간부들이 평일 오후 6시 이후나 주말에 전화나 카카오톡 등으로 업무 관련 지시를 하는 행위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전문역량 강화를 위해 4급 이하 실무자 전원에 대해 격년으로 1주일 이상 교육을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김 위원장은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연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조회에서 김 위원장은 발언 도중 감정에 복받친 듯 말을 잠시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1년4개월간 전원회의를 주재하며 3,000페이지가 넘는 심사보고서 등을 많이 접했고, 그 안에 여러분의 열정과 사명감을 봤다”며 “직원들이 가족, 친구 앞에서 공정위 직원임을 자부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하고 소통하고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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