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9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하겠다고 밝히면서 또다시 북미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 내지 촉진자 역할을 자임했다. 평화와 화해의 상징인 교황을 통해 북미 양측의 비핵화 약속에 구속력을 부여하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속내로 보인다. 방북이 성사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을 방문하는 첫번째 교황이 된다.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는 이날 청와대의 교황 방북 초청 발표 직후 “대단히 기쁜 마음으로 환영한다”며 “이 일을 계기로 바티칸 교황청과 북한의 관계가 진전되고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수행했던 김 대주교는 백두산 천지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남북이 화해와 평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교황청에 전달하겠다”고 했고, 김 위원장은 허리를 숙이면서 “꼭 좀 전달해달라”고 답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교황 방북 아이디어에는 다목적 셈법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교황의 방북 자체가 한반도에 봄이 왔음을 전세계에 천명하며 6ㆍ25 전쟁 종전(終戰)선언을 촉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종전선언과 정상국가화를 바라는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카드다. 미국에게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사실 교황 방북 아이디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북을 권유했다. 당시 교황청이 북한에 종교의 제약을 일부 완화해 달라는 전제조건을 제시했고, 북한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서 불발됐다. 김 위원장이 이같은 전례를 알고 있을 것이란 점에서, 교황 초청은 인권 개선 및 종교 자유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신호라는 관측도 나온다.
종교계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수락을 높게 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 평화에 큰 관심을 보이며 화해를 촉구하고 평화를 기원해 왔다는 점에서다. 그는 4ㆍ27 남북 정상회담 전 미사에서 “한반도를 위한 대화가 결실을 보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에도 “싱가포르 회담이 한반도와 전 세계를 위한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하는 긍정적인 길로 가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한국인에게 특별한 우정과 기도를 거듭 보낸다”고 했다.
분쟁지역의 대립 해소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과 쿠바의 비밀 협상을 적극 중재해 2015년 양국의 국교 정상화를 이끌어 냈다.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의 화해를 중재해 2016년 반세기에 걸친 내전을 끝내는 데도 공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방한해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위로하고 남북 화해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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