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 서른은 훨씬 넘었죠?”
올해 여름 한 공공기관에서 최종 면접을 보던 A(38)씨는 면접관에게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 해당 공공기관의 채용은 분명 ‘블라인드’로 이름은 물론이고 나이나 학력 관련 정보를 제출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A씨는 마흔 가까운 나이에 신입사원에 도전한 터였다. 하지만 정작 면접에서 관련 질문을 받으니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서른은 넘었다’고 얼버무리려 했지만 면접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재차 정확히 몇 살이냐고 물어왔다”며 “기업들이 암암리에 나이 제한을 두고 어린 지원자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나이 때문에 결과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 면접 내내 신경 쓰였다”고 말했다. 나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결국 면접에서 탈락했다.
정부가 나이와 학벌 등 직무와 무관한 정보로 구직자를 차별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공공기관에 전면 도입한 게 작년 7월. 1년도 훨씬 넘었지만 현장에서는 ‘서류 따로, 면접 따로’의 형식적인 블라인드 채용이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구나 취업준비생들이 적극적으로 신고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단속조차 ‘눈 가리고 아웅’으로 이뤄지고 있다.
1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이달 6월말까지 정부가 운영 중인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ㆍ면접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는 단 10건에 그쳤다. 총 접수는 24건이지만, 이중 14건은 민간기업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적은 신고건수가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의 ‘현장 정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고센터는 실제로 공공기관에 지원했던 취업준비생, 면접 과정에 참여했던 외부 전문가 등을 상대로 블라인드 채용이 실질적으로 이뤄졌는지 제보를 받는다. 그러나 공공기관 취업준비생들은 혹여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 탓에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신고센터는 익명으로 운영되지만, 구체적인 상황을 제보하다 보면 신원이 드러나기 쉽다는 것이다. A씨는 “또 다른 기관의 채용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신고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금융공기업에 지원했던 B씨도 “최종 면접 전 대학과 생년월일을 물어 면접관에게 미리 알려주는 곳도 있었지만, 지원자 입장에서 혹시 당락에 영향을 미칠까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정부도 단속에 적극적이지 않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한국마사회 등 6개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한 현장점검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을 위반한 사례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련 신고가 들어온 기관을 점검 대상으로 추린 것인데, “문제가 없다”고 마무리한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점검 시 면접관에게 제공되는 자료에 신상정보가 포함되지 않았고, 응시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학력이나 나이, 외모 등 편견요인과 관련된 질문을 받은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점검 계획이 대상 기관에 사전에 알려지는데다 조사도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샘플조사로 이뤄져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올해 상반기 현장점검을 받은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언제 현장점검을 나온다고 알려져서 미리 준비를 했다”고 토로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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