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한 달 넘게 공개석상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를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소득주도성장을 포괄하는 포용적 성장이나 민간기업 분야 경제정책인 혁신성장ㆍ규제개혁은 한 달 사이 7차례나 사용했다. 부정적 프레임에 갇힌 소득주도성장 언급을 자제하고, 경제정책의 무게중심도 민간기업 분야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규제혁신법안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역특구법, 산업융합촉진법, 정보통신융합법의 공포가 오늘 국무회의에서 의결된다”며 “그동안 경직된 규제로 어려움을 겪던 신기술과 신산업에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제에 발목이 잡혀 신기술과 신산업이 싹도 피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물론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들을 위한 좋은 규제도 있다”면서도 “서로 충돌하는 가치 사이에서 일방적인 규제 고수나 규제 철폐가 아닌 합리적이고 조화로운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제완화에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으로,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를 비판해 온 진보 성향 시민단체를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최근 경제정책의 양 축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가운데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지난 9월 4일 은평구 도서관마을 방문 때 “소득주도성장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한 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를 한 달 넘게 사용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반면 중ㆍ하층 노동자들의 소득증가, 복지, 공정경제를 아우르는 포용적 성장은 9월 6일 포용국가 전략회의 이후부터 세 차례, 혁신성장과 규제개혁도 8월 31일 개인정보 규제혁신을 위한 현장방문 때부터 공식 행사나 회의에서 네 차례 언급했다.
청와대는 “포용적 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청와대가 최저임금과 동일시되는 소득주도성장 대신 포용적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 한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개최한 고위당정청 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별도로 논의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정청은 대신 혁신성장을 가속화하고 기업의 활력을 제고키로 하는 방안을 협의했다고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밝혔다. 홍 수석대변인은 “소득주도성장을 별도로 논의한 건 아니고 당에서 주문한 개혁입법 관련 경제민주화, 민생법안이 사실상 소득주도 법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지용 기자cdragon25@hankookilbo.com
서진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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