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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어떻게 사기(詐欺)를 당하나?

입력
2018.10.08 18:5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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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 박사의 ‘설득의 심리학’은 설득의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유명한 책이다. 그 내용 중 ‘호감의 법칙’과 ‘일관성의 법칙’ 부분을 읽다가 사건을 통해 접한 사기꾼들의 사기 수법이 이 법칙들을 활용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산가 A로부터 10억원을 편취(騙取)하려는 사기꾼. 과연 어떤 전략을 사용할까? 사기꾼은 우선 2, 3일만 쓰고 갚겠다면서 A로부터 100만원을 빌린다. 사기꾼은 정확히 이틀 후에 돈을 갚는다. 고마움의 표시로 10만원의 이자까지 얹어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사기꾼은 1주일 정도 쓰고 갚겠다며 A로부터 1,000만원을 빌리고자 한다. 첫 번째 거래에서 약속을 지켰기에 A는 큰 의심 없이 돈을 빌려준다. 사기꾼은 5일 만에 돈을 갚는다. 역시 고마웠다면서 100만원의 이자를 얹어준다. 사기꾼은 A와 친분을 더해 간다. A의 부인,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고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사기꾼은 한 달만 쓰고 갚겠다면서 1억원을 빌려달라고 A에게 부탁한다. A는 돈의 규모가 커서 조심스러웠지만 이미 사기꾼에게 신뢰를 가진 상황이다. 사기꾼은 1억원을 빌린 후 단 2주 만에 돈을 전부 갚는다. 이때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1,000만원의 이자를 얹어준다. A는 ‘이자는 됐네. 내가 돈놀이 하는 사람도 아닌데...’라면서 사양하지만 사기꾼은 ‘그래도 사람의 도리가 그게 아닙니다’라며 기어이 A에게 이자를 준다.

A에게는 나이 든 어머니가 계신데, 여러 병원을 다녀도 잘 낫지 않는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사기꾼은 이를 알고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노모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실력이 좋다는 의사의 진료를 받게 해주었다. A의 노모는 그 후 허리 통증이 많이 완화됐다.

A가 돈은 많지만 사회적 네트워크가 별로 없다는 점을 콤플렉스로 느끼고 있음을 아는 사기꾼은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회합에 A를 초대해 좋은 인맥을 쌓도록 도와주었다. A는 자신이 부족하던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얼마 후 사기꾼은 A에게 투자 제안을 한다. 정말 유망한 투자 기회가 있는데, 평소 자신을 도와준 A에게 이 기회를 먼저 주고 싶다면서. 사기꾼은 두툼한 사업계획서를 보여주고는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진행하는 일이며, 자신도 이미 5억원 정도를 투자했다고 한다. A에게는 10억원 정도를 투자한다면 1년에 20%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A는 사기꾼이 건넨 사업계획서는 대충 읽어봤다. A는 그 사업계획서가 아니라 그동안 신용을 지켰고,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그 사람’을 믿고는 투자를 결심했다.

A로부터 10억원을 전달받은 사기꾼은 A에게 영수증을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사라져 버린다. 연락두절....

전체 과정을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명하면 ‘내가 이런 데 속겠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사기꾼이 작심하고 단계별로 치밀하게 접근하면 십중팔구 여기에 걸려든다.

A는 사기꾼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으며 자신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주는 A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어 주위 사람들이 뭐라 그래도 “아니야, 당신이 그 사람을 잘 몰라서 그래”라는 식의 변호까지 하게 된다. 하수 사기꾼은 입만 뻥긋하면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고수 사기꾼은 최후의 한 방을 노리며 계속 신뢰와 호감을 쌓아간다. 때문에 그 마수를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헛된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헛된 욕심이 없다 하더라도 이처럼 사람의 인정과 배려에 현혹되어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은 그래서 무섭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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