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재차 낮추되 그에 구애되지 않고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총재는 “금리 인상이 필요한데도 외부 의견을 의식해 인상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금리 인상 조건이나 시기를 둘러싼 시장의 관측이 분분한 상황에서 통화 당국 수장이 금리 정책의 고유성과 중립성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한은이 이달 1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7일 한은에 따르면 이 총재는 5일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각 경제통계의 실적치로 미뤄볼 때 성장과 물가에 관한 종전 전망치가 다소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금통위 회의일인 오는 18일 주요 경제지표 전망치를 수정 발표하는데, 7월 발표된 종전 전망치 중 성장률(2.9%)과 물가상승률(1.6%)을 낮추겠다고 미리 알린 셈이다. 앞서 한은은 7월에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0%에서 2.9%로 낮췄고, 1월과 4월엔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0.1%포인트 낮춘 바 있다.
이 총재는 그러나 “경기ㆍ물가 등 거시경제 상황과 금융불균형 누적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기본적 입장은 크게 바뀐 게 없다”며 “(전망치가)조정되더라도 잠재성장률(한은 추정치 2.8~2.9%) 수준의 성장세와 물가목표(2%) 수준으로의 점진적 접근이라는 큰 흐름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그간 우리나라 성장세가 잠재성장률 수준에 부합하며 물가상승률은 연말로 갈수록 2%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이번 전망치 조정폭이 이런 입장을 바꿀 만큼 크지 않은 한 금리를 올려야 마땅하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내외금리차 확대,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 속도를 금리 인상이 필요한 이유로 재차 강조했다. 반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고용 지표에 대해선 “구조적ㆍ제도적 요인과 일부 업종의 업황 부진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에 단기간 내 크게 개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는 12일 발표되는 9월 고용동향 지표에서 취업자 수 증가 수가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예측이 파다한 상황에서, 고용 부진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해 이 총재는 “금통위가 본연의 책무에 충실하게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며 “외부 의견을 너무 의식해 금리인상이 필요한데도 인상을 하지 않는다든가, 인상이 적절치 않은데도 인상을 하는 결정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장에서 확산 중인 ‘11월 금리 인상론’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올해 금통위 회의가 두 차례(10월, 11월) 남은 상황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최근 수도권 집값 급등을 들어 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자, 시장에선 한은이 ‘정부의 압력 탓’이란 뒷말을 낳을 수 있는 10월 인상 대신 11월 인상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재가 당장의 경기지표 악화는 물론이고 외부 의견 또한 크게 신경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자 시장 일각에서는 이달 금리 인상 단행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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