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퀸즈 시티 필드. 뉴욕에 사는 숀(45)ㆍ제이미(44) 부부는 아들뻘 되는 한국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공연장을 찾았다. 딸 라이언(11)과 그의 친구 메이시와 함께였다. 숀은 “딸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해 나도 팬이 됐다”며 웃었다. 그는 방탄소년단 음악이 미국 팝 음악보다 멜로디가 풍성해 좋다고 했다. 제이미는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의 팬. RM의 영어 이름 장식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공연장을 찾은 그는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유엔총회에 자화자찬 연설로 놀림을 받았지만 RM의 연설은 정말 감동적이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방탄소년단 공연엔 가족 단위로 온 관객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방탄소년단은 미국에서 어느덧 세대를 아울러 사랑받는 가수로 성장하고 있었다.
한국말 노래 따라 부르며
“BTS, BTS!” 180여 분 공연 동안 4만여 관객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첫 곡 ‘아이돌’이 나올 때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리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탈춤에서 따온 ‘아이돌’ 춤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아미’(방탄소년단 팬덤을 일컫는 말)는 노래 ‘매직숍’ 무대에서 “소 쇼우 미(So Show Me)”라는 가사가 흐르자 기다렸다는 듯 “아윌 쇼우 유(I’ll Show You)”를 외치며 호응했다. 한국말로 된 노래도 곧잘 따라 불렀다. 방탄소년단이 ‘아이 니드 유’와 ‘DNA’, ‘페이크 러브’, ‘불타오르네’ 등 32곡을 열창하는 동안 관객들은 방탄소년단 전용 야광 응원봉을 흔들며 어두운 공연장을 내내 밝혔다. 관객의 피부색과 국적만 다를 뿐 방탄소년단의 한국 공연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비틀스 공연 후 53년 만… ‘21세기 K팝 인베이전’
방탄소년단의 이번 공연은 특별했다. 시티 필드는 미국 프로야구 명문 구단인 뉴욕 메츠의 홈구장으로 4만 여명을 수용하는 대형 공연장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잠실종합운동장이다. 명성이 높은 만큼 대관 조건이 까다롭다. ‘록의 전설’ 비틀스 멤버인 폴 매카트니와 비욘세 등 특급 스타들만 이 무대에 섰다. 한국 가수가 시티 필드에서 공연하기는 방탄소년단이 처음이다.
비틀스는 1965년 당시 뉴욕 메츠 홈구장이던 셰이 스타디움에서 공연하며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 가수의 미국 음악 시장 진출)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53년이 지나 방탄소년단이 현 뉴욕 메츠 홈구장에서 ‘21세기 K팝 인베이전’의 주인공이 됐다.
뜻깊은 곳에서의 공연에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감격했다. RM은 “음악이 제 삶을 바꿨고, 꿈을 꾸게 했고, 새 삶을 줬다. 여러분의 사랑으로 한국 가수 최초로 스타디움(시티 필드)에 오게 됐다”며 울먹였다. 방탄소년단은 시티 필드 공연으로 북미 순회공연을 마쳤다. 지난달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형복합문화공간 스테이플스센터를 시작으로 한 달간 미국과 캐나다에서 15회 공연을 열어 22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봄날’ 세월호 추모 의미도 알아”
2007년 세븐을 시작으로 보아, 원더걸스 등 K팝 스타들이 꾸준히 두드렸으나 미국 주류 음악 시장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스타디움 공연은 그들의 음악이 미국 음악팬들에게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의미다. 시티 필드에서 만난 관객 상당수는 방탄소년단의 한국어 노래 맥락을 이해하고 있었다. 노래 ‘봄날’에 세월호 추모의 뜻이 담겼다는 걸 아는 이도 여럿이었다. 마이애미에서 온 케이틀린(23)은 “‘봄날’을 좋아한다”며 “뮤직비디오에서 지민이 바닷가에서 누군가의 신발을 집어 들고 있는 장면 등이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곡 뮤직비디오 해석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보고 곡에 숨겨진 얘기를 알게 됐다”고 했다. 이날 공연장에서 만난 20명의 관객 중 8명은 ‘아이돌’ 후렴구인 ‘얼쑤 좋다’와 ‘지화자 좋다’가 옛날 한국 사람들이 흥이 났을 때 쓴 감탄사라는 것도 알았다. 버지니아에서 온 제이미(18)는 “다른 가수들이 돈 얘기만 할 때 방탄소년단은 삶을 얘기한다”며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들을 때 꼭 가사를 번역해보는데 한글은 정말 아름다운 언어고 배우고 싶은 말”이라고 말했다.
공연장 쓰레기 치우는 한국식 팬덤도
뉴욕 공연장 밖 열기는 한국보다 뜨거웠다. 미국 팬들은 뉴욕의 상징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광고를 해 방탄소년단의 미국 활동을 응원했다. 방탄소년단 노래를 내세워 노숙자들에게 음식이 담긴 캔과 담요를 기부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엔 공연장 쓰레기를 치우는 한국식 팬덤 문화도 볼 수 있었다.
미국 관객들은 무대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1주일 전부터 공연장 밖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웠다. 인근 호텔 투숙비는 평소보다 5배 가량 높았다. 뉴욕 지하철(MTA)은 공연장을 지나가는 지하철을 추가 편성했다. 북미 순회 공연을 끝낸 방탄소년단은 영국(9, 10일)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에서 유럽 순회 공연을 잇는다.
뉴욕=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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